민족 차별과 빚독촉협박에 격분해 일본 조직폭력배 2명을 사살하고 인질극을 벌인 죄로 31년째 복역중인 재일동포 무기수 김희로씨가 곧 가석방된다고 한다. 일본 법무당국은 김씨가 고령인데다 박삼중스님의 끈질긴 교화노력, 앞으로의 한일관계 발전등을 고려해 그의 가출옥을 결정했다고 한다.김씨의 한맺힌 스토리는 재일한국인의 차별적 삶과 인권문제를 상징하는 일제 식민역사의 서글픈 잔영이다. 물론 그의 31년 옥살이가 일본의 차별과 멸시에서 비롯됐다 해도 그가 저지른 범죄자체를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눈에는 그가 민족혼을 발휘한 영웅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일본의 눈에는 「엽총을 든 살인범」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을 건 그의 외로운 항일(抗日)을 통해 한국정부와 한국인이 대리만족을 느낀 측면이 있다면 이는 김희로에 대한 조국의 분명한 부채다.
재일한국인에 대한 일본정부의 차별적 인식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있다.
지난 13일 외국인 등록법개정으로 일본의 외국인 지문날인 제도가 폐지되긴 했으나 여전히 참정권이 인정되지 않고 있고 공무원채용의 길도 제한돼 있다.
지문날인제 폐지도 최선애씨와 같은 재일동포들이 끈질기게 차별철폐운동을 벌여 얻어낸 결과다. 일본인과 똑같이 세금을 내고서도 국적조항에 묶여있는 재일한국인은 70여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반쪽 삶을 채우기위해 국적을 버려야 하는 힘겨운 선택에 직면해 있다. 취업을 하더라도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한국이름 보다는 일본이름을 사용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같은 재일한국인의 어려움에 대해 지금까지 조국은 어느만큼 관심을 가져 왔는지 자문해 봐야한다. 김씨가 중범죄자이긴 하나 일본의 행형관행에 비추어 볼때 일본 역사상 최장기인 31년의 복역은 너무 가혹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외교채널을 통해 김씨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김씨의 이번 가석방도 순전히 민간차원의 구명운동이 밑거름이 됐다.
재일한국인의 권익신장문제는 우리가 일본정부에 대해서만 일방적으로 요구해서도 안되는 사항이다. 재일동포의 참정권을 요구하기에 앞서 한국 내 외국인부터 참정권을 허용해주는 상호주의가 존중돼야 마땅하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우리정부가 국내정주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참정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김희로의 귀향을 계기로 재일한국인 차별문제가 재조명될 수 있다면 그는 비록 황혼에 이르러 자유를 되찾았지만 재활의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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