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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로 석방] 이발사의 값진 '30년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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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로 석방] 이발사의 값진 '30년도움'

입력
1999.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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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 전쟁 31년」 뒤에는 한 평범한 시민의 30년에 걸친 눈물겨운 석방운동이 있었다.민족차별에 격분, 일본인 조직폭력배를 살해한 후 일본에서 무기수로 복역하던 재일동포 김희로(金嬉老·71)씨가 31년만에 풀려나 귀국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26일.

「김희로 석방후원회」 이재현(李在鉉·이발소경영·52)회장은 『30년을 하루같이 기다리던 소식』이라며 『처음엔 두 귀를 의심했지만 곧 수십년 참아온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의 사연을 신문에서 읽고 70년 석방후원회에 가입, 75년부터 지금까지 회장을 맡아온 그는 『내 돈을 써가며, 때론 비아냥도 들어가며 석방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동포애, 그리고 김씨와 500여통의 편지를 나누며 쌓아온 우정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기필마로 석방운동을 벌이던 이회장은 90년 재소자 교화로 널리 알려져 있던 박삼중(朴三中·57·부산자비사)스님을 석방추진위원장으로 모시고 한층 힘을 얻었다.

김대중 대통령과 국회의원 60여명 등을 포함, 한·일 양국에서 35여만명의 석방탄원 서명을 받아 일본 정부에 제출한 것이 대표적 활동. 이 과정에서 일본을 7차례나 드나들면서 생계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강북구 미아5동에서 약수이발관을 운영해 남부럽지 않게 살 수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돈이 모이면 모두 석방활동 자금으로 썼기 때문이다.

이회장은 『정말 힘들었던 점은 경제문제가 아니라 반짝했다 없어지곤 하는 국민들의 무관심이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는 『역경을 이겨낸 김씨에게 고마울 뿐 나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겸손해하며 『40세의 김희로씨는 71세 노인이 됐고 23세이던 나도 50줄이 넘어버렸다』고 웃음지었다.

서울 관악구 봉천3동 언덕빼기 6평짜리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와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석방된 김씨를 위해 또다른 사업을 구상하겠다는 이회장은 『김씨가 조국의 품에서 남은 여생을 행복하게 보내는 것 외엔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조용범기자

prodig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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