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발상에 문제가 많다. 재정경제부는 지난 18일 오전 30대 재벌이 소유한 금융기관은 상호에서 소속 그룹의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재벌 소속 금융기관의 상호에서 그룹명칭의 사용을 배제해 외형상 산업자본과의 분리를 촉진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우선 금감위 행정지도를 통해 이를 유도하고 중장기적으로는 법률개정을 검토키로 했다. 현재 5대 재벌 계열의 금융업종 회사는 모두 39개로 이중 33개사가 그룹명칭을 사용하고 있다.■그러나 재경부는 이날 오후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제출 안건에서 이같은 내용을 삭제했다. 무리 정도가 아니라 초헌법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기 때문이다. 기업의 상호는 그 회사의 얼굴이고 이름을 정하는 것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아도 되는 자유인데, 아무리 제2 금융권의 지배구조개선이 시급하다지만 상호 사용을 금지시킬 수 있는 것일까. 기상천외한 방안이나 해프닝이었다고 그냥 넘기기에는 엘리트 관료집단임을 고려할때 이해하기 힘들다.
■재벌 소속 금융기관들의 폐해는 그동안 많이 지적됐고, 이를 개선하지 않으면 재벌개혁이 어렵다는 분석도 꾸준히 제기됐다. 김대중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를 막아야 재벌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고, 재경부가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만들어 이날 금발위에 제출한 것이다. 기업이름을 바꾼다고, 소속 그룹의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이 분리가 된다는 생각을 어떻게 했을지 정말로 궁금하다.
■행정지도도 문제다. 그동안 창구지도, 행정지도라는 명목으로 얼마나 많은 초법적 행위들이 자행되었던가. 없어져야 할 규제 1호인데, 규제개혁을 강조하는 정부가 아직도 그런 발상을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얼마전 씨랜드수련원 화재로 아들을 잃은 필드하키 국가대표선수 출신 어머니가 정부의 무성의한 대책에 항의하며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을 모두 반납하고 이민을 떠날 것이라고 해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정부는 정말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이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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