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린 장편 「내 생애 꼭 하루 뿐인 특별한 날」김탁환 소설 「누가 내 애인을 사랑했을까」『사랑이여 위대하라』고 외치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사랑이 결혼에 갇힌 것은 벌써 오랜 일이고, 그러지 않더라도 이제는 너무도 통속적이고 흔한 일이다. 대단하고 신비로운 것이란 차라리 시장 바닥에서 찾는 것이 나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사랑」을 말하려면 우리는 밖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다. 또는 아예 사람 속 깊은 곳으로 내려가든가. 90년대식 젊은이들의 사랑은 멀지 않은 70, 80년대의 고통스런 추억과 더불어 있거나, 내면 밑바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맴돌고 있다. 김탁환씨의 새 장편소설 「누가 내 애인을 사랑했을까」(푸른숲 발행)와 다음 주 초에 나올 전경린씨 장편 「내 생애 꼭 하루 뿐인 특별한 날」(문학동네 발행)은 이런 사랑 이야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김씨는 첫 소설 「열 두 마리 고래의 사랑 이야기」와 이순신을 다룬 장편역사소설 「불멸」에서 젊은 이야기꾼의 재주를 보여준 작가며 평론가다. 이번 소설 역시 「만담(漫談)」을 듣는 듯한 발랄한 이야기의 힘이 살아 있다. 소설은 여섯 개의 주제로 이어지는 연작. 치욕, 청순, 용기, 관능, 위악, 박애의 구성이나 주제는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를 닮아 있다. 또는 고리를 잇는 진행이 밀초 만체브스키의 영화 「비포 더 레인」과 흡사하다. 문장은 짧으면서, 접속어가 없어 참으로 경쾌하게 읽힌다.
네 명의 여자와 두 남자의 이야기. 「치욕」은 한 남자를 맹목으로 사랑하다 결국 버림받고 자살하는 여자의 안쓰러운 그림자고, 「청순」은 수녀가 되려 했지만 결국 시위 대열에 깔려 생을 마감하는 여자의 이야기다. 그리고 스무 살의 꿈을 가슴에 품고 홀로 생의 오솔길을 걸어가다 사막에서 증발하는 남자. 소설에서 사람들은 모두 자기 식대로 죽거나 미치거나 사라진다. 어이없거나 치기 어리지만 사람과 삶을 순진하게 사랑했던, 그리고 꿈을 잃지 않으려 했던 젊은 날의 초상이 담겨 있다.
전경린씨의 소설은 지독한 불륜의 기록이다. 「스물 한 살에 만난 남자가 그의 전 생애 동안 오직 나만을 사랑하고, 나 또한 단 하나의 남자만을 사랑하며」 평생을 살려 했던 여자. 그것을 「하나의 이념」처럼 지킬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여자가 남편의 불륜에 맞닥뜨리고, 또 자신도 불륜을 저지른다. 전경린의 이전 소설처럼 유화 붓을 정교하게 찍어바르는듯한 아름다운 문장의 매력이 살아있으면서, 전에 볼 수 없던 성(性)에 대한 표현이 생생하다.
소설은 너무도 통속적이다. 얽히고 설킨 남녀 관계는 진부하기 이를 데 없고, 어떤 대목에서는 역겹기조차 하다. 작가가 하려는 말은 무언가? 「삶도 둥글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바다를 건너 언젠가는 그 처음으로 가 닿고 싶다」. 자신을 찾아 나서는 고통스런 여행은 언젠가는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모험이다. 그 자리가 출발할 때 모습 그대로가 아니기를 바라면서.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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