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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논단] 개혁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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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논단] 개혁의 방향

입력
1999.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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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정부 출범 일주년을 맞아 그동안 추진된 개혁을 놓고 여러가지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부정적인 평가중 일정 부분은 개혁자체가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개혁에 대한 철학과 정당화 노력이 부족해서 자초된 것들이 있어 보인다.대표적인 것중 하나가 개혁의 방향에 관한 좌우 양측으로부터의 비판이다. 우(右)에서는 정부가 시장경제를 하겠다고 해놓고서 왜 경제에 자꾸 개입을 하느냐는 비판이다. 이러한 비판에는 분명 오류가 있다. 그것은 「시장」이라는 메커니즘이 국가가 뒤로 빠지기만 하면 저절로 생겨나는 것처럼 믿는 점이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제도적인 틀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 틀을 만드는 작업은 정치적이면서도 조심스러운 작업이다. 그러나 조심스럽다고 해서 그 작업을 정부가 하지않으면, 한국경제는 시장경제가 아닌 정글로 변할 것이고, 민주주의도 불가능할 것이다.

제도적인 틀의 일차적인 목표는 경제주체들이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독과점을 규제해야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과점이 규제되지 않으면 형평성 뿐만 아니라 효율성도 깨진다.

국가 공공조직은 독점적인 사적 이입집단에 의해 포획되어 버리고, 민주라는 허울을 쓴 부정부패는 일상화되면서 대의정부는 도덕적으로 해체되어 버린다. 과거 정부들이 재벌체제의 폐해를 알면서도 개혁을 못하고 IMF사태까지 온 것은 바로 한국의 국가가 사적 이익집단에 포획되어버린 결과였다.

김대중정부 개혁의 중요한 의미는 재벌이든, 노동으로부터든 포획의 고리를 끊고 국가의 심판자, 조정자 위상을 설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또한 정부는 경제주체들 상호간에 감시와 견제가 가능하도록 힘이 분산된 틀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래서 재벌, 은행, 정부간에 유착을 막고 도덕적 해이의 소지를 줄여야 한다.

이러한 틀을 만드는 것이 정부개입을 필요로 하고 사실은 가장 중요한 개혁의 본질이다. 지금까지 추진해온 4대 부문의 구조조정은 과거의 왜곡된 틀이 만들어낸 부작용을 청소하는 작업으로, 새틀을 만드는 준비 작업에 불과했다. 그러한 의미에서 개혁은 이제 시작일뿐이고 정부는 이점을 국민들에게 강조했어야 한다.

또다른 좌(左)로부터의 비판은 정부가 한국경제를 신자유주의로 몰고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영미식의 시장만능주의는 부의 불평등 분배와 국제적 예속의 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걱정들은 일면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서구학자들이 논의하는 「개념」과 한국경제의 「현실」간의 엄연한 간격을 무시하고 있다.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한국경제의 문제는 시장이 과도하게 작동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작동을 못해서 생긴 문제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걷는 연습하는 어린아이에게 뛰는 것은 위험하니 걷지도 말라고 하는 걱정처럼 들리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서 정부는 좀더 솔직하게 접근했어야 했다. 97년 현재 대외의존도 80%의 국가, 수출안되고 외국자본 안들어오면 당장 길거리에 나가 앉아야 될 국민들이 몇백만인 중위권 개방형 국가가 한국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현실의 제약은 무시하고, 모든 것을 우리 마음대로 할수 있는 폐쇄경제속에서 살고 있는 것 처럼 생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느 미국학자는 한국이 서방금융에 의존하지 말고 동남아 채무국들과 카르텔을 맺어 대항하라는 「속시원한」 권고를 한적이 있다.

정부는 그러한 「속시원한」 처방들이 얼마나 무책임할 수 있는지 보여주지 못했다. 그결과 국민의 기대수준을 높이고 스스로 짐을 짊어졌다. 정부는 얼마나 세계화라는 파도가 험난하고 우리의 선택의 폭은 좁은지, 그러나 왜 뒷걸음질 칠 수는 없는지를 진솔하게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협조를 구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윤 영 관 尹永寬·서울대 교수·국제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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