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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과뒤] 교육부장관과 문화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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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과뒤] 교육부장관과 문화부장관

입력
1999.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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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학회는 3월1일 탑골공원에서 「말글문화 독립선언문 선포식」을 갖는다. 최근 꼿꼿이 머리를 드는 한자병용 주장을 「일제의 잔재」라고 규정, 어문문화의 종속을 끊는 새로운 독립을 선포하기 위해서다.반면 한국어학회는 한자병용을 주장해온 40여개 관련단체를 모아 「전국 한자교육추진 총연합회」를 결성했다. 차제에 30년 가까이 득세해온 한글전용론자들의 기를 꺾고 한자혼용으로 가는 길을 닦아두기 위해서다.

이처럼 같은 하늘아래서 못살 정도로 으르렁거리면서도 긴장의 균형상태를 유지해온 두 문파(門派)를 돌연 중원의 대회전으로 이끌어낸 사람은 신낙균(申樂均)문화관광부장관이다. 그는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난데없이 「전통문화 계승과 한자문화권의 교류확대」를 내세워 공문서와 도로표지판에 한자를 병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긍정적인 의사를 밝혀 무게를 실어주었다.

하지만 짧게는 30년, 길게는 50여년동안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해온 사안의 무게추가 너무나 손쉽게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보면서 적잖은 사람들은 곤혹감을 느꼈던 것같다. 아무리 어문정책의 주무장관이라고 하지만 공문서 혹은 표지판과 직접 관계가 없는 장관이 「검증되지 않은 논리」를 들이대면서 얘기를 주도한 장면부터 어색하다. 돈(관광진흥)을 위해서는 정신(어문정책)도 팔 수 있다는 천박한 시장주의도 엿보인다.

역으로 당연히 의견을 내놓았어야 할 교육부장관 등 관계장관이 꿀먹은 벙어리마냥 앉아 있었던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사안이 민감하다고 현장에선 입을 닫고 뒷전에서만 투덜대면 어떻게 아랫사람들의 복지부동을 탓할 것인가. 김대통령도 신중하게 처신한 것같지는 않다.

수십년동안 갖가지 논리와 사례로 무장한 한자파와 한글파가 논쟁을 거듭해오고, 이에 따라 국론도 확연히 양분된 사안의 방향을 하루아침에 바꾸려한 시도는 온당치 못하다.

한글전용이 타당한지, 한자병용이 좋은지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지만 적어도 문화관광부장관이 일방적으로 정리할 사안은 아님에 틀림없다.

yslee@hankookilbo.co.kr

이유식 사회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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