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륙후 5분·착륙전 8분 「마의 13분」 덫에/수풀 스치며 기체 “조각조각”/장대 비·짙은 안개속 동체 진흙에 쳐박히고 커다란 불길이 솟구쳐6일 새벽 괌행 대한항공 801편 기내.
「잠시후 미국령 괌의 아가냐 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승객여러분께서는 안전벨트를 확인해 주십시오」 승무원의 안내방송에 승객들은 잠시 붙였던 눈을 떴다.
김포공항을 떠난지 4시간여. 승객 2백31명과 승무원 등 2백54명을 태운 보잉기는 활주로 사정으로 당초 출발예정시간보다 15분 정도 지체된 5일 하오 8시20분 김포공항을 이륙했다. 승객들은 태평양 위의 아름다운 섬 괌을 내려다보려 창문 밖으로 눈길을 돌렸으나 어둠이 짙게 내린데다 빗줄기까지 굵어 지상에는 불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우리시간으로 6일 0시50분. 도착예정시간을 벌써 7분이나 넘겼다. 그러나 승객들은 출발시간이 지체된데 비하면 그나마 빨리 도착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대감에 창 밖을 기웃거리는 순간 갑자기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왼쪽 날개가 어딘가 둔탁한 곳에 닿는듯한 느낌이었다. 빗줄기와 검은 구름만이 보여야 할 창 밖으로 나무들이 스쳐지나가고 있엇다.
한편 콕핏(조종실)에서 조종간을 잡고 있는 박용철(44) 기장의 손에서도 진땀이 났다. 박기장은 공군 파일럿으로 활약하며 소령으로 예편한뒤 94년부터 보잉747기만 4천시간 가까이 조종한 베테랑이었지만 오늘따라 불길한 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마의 13분」이라는 속설이 자꾸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항공사고의 확률은 이륙할 때의 5분과 착륙할 때의 8분때 가장 높다는 것이 정설. 고도비행 중에는 기류이상 등으로 인한 수십m의 급락도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이착륙시에는 몇m만 고도가 떨어지거나 높아져도 그대로 치명적인 사고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착륙하겠다』 『착륙하라』 공항관제탑과 무전을 교환한지 1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랜딩기어를 내리고 고도를 낯추는 순간 좌측 항공기 날개쪽으로부터 「쿵」하며 활주로가 닿는 느낌이 전해졌다.
기체는 공항을 코앞에 둔 언덕의 정상의 야자수나무 숲에 처음 추락한 후 2.5㎞를 미끄러져 또다른 언덕의 진흙탕에 앞부분을 쳐박았다. 야자수나무들의 윗부분이 마치 가위로 자른듯 가지런히 잘려나갔으며 인근 군사도로를 따라 날개와 엔진 등 잔해들이 곳곳에 널부러져 있었다. 추락 항공기의 왼쪽날개가 먼저 야자수나무 숲에 부딪친 뒤 그대로 미끄져져 나간 것이다.
야자나무숲에 부딪치는 순간 박기장은 급히 비행고도를 상승시키려했으나 불가능했다. 0시55분 굉음과 함께 기체는 서너조각으로 찢어지며 산비탈을 달렸다. 동시에 불길이 치솟았다. 불에 타면서 발생한 연기와 짙은 안개는 승객들의 비명소리를 삼켜버리고 있었다.<송용회 기자>송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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