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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방송직후 갑자기 “쾅”/극적생존 홍현성씨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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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 방송직후 갑자기 “쾅”/극적생존 홍현성씨 증언

입력
1997.08.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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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폭발·유독가스 휩싸인 기내 아수라장/기체 세동강 곳곳 “살려주세요”/여승무원 부축 천장틈새로 필사탈출/장대빗속 헬기소리 셔츠 흔들어 신호대한항공 801편이 김포공항을 이륙한 것은 예정시간보다 15분 늦은 5일 하오 8시20분께였다. 하오 9시20분께 항공기가 경유지인 부산에 도착하자 천둥을 동반한 무시무시한 비바람이 항공기 창문을 때렸다. 불운의 전조였을까.

가족단위로 괌여행길에 오른 승객들은 애써 불안함을 감추며 도란도란 흥분된 정담을 나누었다.

7년전부터 괌에서 음식점 「한국관」을 운영해 온 홍현성(36)씨가 살포시 잠이 들었다가 도착을 알리는 기내방송을 듣고 눈을 뜬 시간은 6일 0시15분(한국시간). 창밖으로 오렌지 불빛으로 유명한 괌의 야경이 언뜻 비치는가 싶더니 갑자기 「쾅」하는 굉음과 함께 기내는 충격과 암흑에 휩싸였다.

홍씨는 추락의 충격에 잠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떴다. 본능적으로 「비상사태」를 직감한 홍씨는 주위를 둘러봤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대신 살갗이 찢어진 듯 전신에 통증이 엄습해왔다.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가 다소 불편한 홍씨는 비상구쪽으로 기어가 문을 밀었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언뜻 항공기 실내천장이 갈라졌는지 희미한 불빛이 비쳤다. 추락의 충격으로 기체가 동강났던 것이다. 홍씨는 의자와 짐칸을 움켜쥐고 젖먹던 힘까지 다해 천장에 매달렸다.

기내는 아수라장이었다. 여기저기서 『살려달라』는 절규와 비명이 들렸다. 기체를 탈출하는 순간 『살려주세요. 저를 데리고 나가주세요』라는 가녀린 소리와 함께 누군가 홍씨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여승무원 오상희(25)씨가 신음하듯 구조를 요청하고 있었다. 홍씨는 오씨를 끌어올려 탈출시킨 뒤 기체를 빠져나왔다. 기진맥진한 여승무원을 부축하고 기체를 빠져나왔지만 하늘에서는 구멍이 뚫린 듯 장대비가 쏟아졌다. 여기저기서 화염과 함께 폭발이 계속됐고 유독가스도 퍼지기 시작했다. 홍씨는 직감적으로 『빨리 현장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홍씨와 여승무원은 산 정상에 물구나무 서듯 세동강 나있는 잔해를 피해 산등성이 아래로 무작정 기었다. 여승무원은 화상을 입은 듯 유니폼이 심하게 그을렸고 쓰라림과 갈증을 호소했다. 홍씨는 셔츠를 벗어 여승무원의 어깨를 감싸준 뒤 『죽지 않으려면 내 팔을 붙잡아』라고 말했다.

그렇게 헤매길 1시간여. 폭발음이 계속되는 가운데 홍씨 뒤쪽으로 부상 승객 5∼6명이 뒤따랐다.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열대림의 정글을 헤치며 나가던 홍씨가 손목을 올리자 야광시계는 상오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가기 시작하고 졸음이 엄습했다. 홍씨는 『1시간만 더 버티면 먼동이 튼다. 우리는 살 수 있다.』고 부상 승객들을 독려했다. 상오 4시께 언뜻 헬기 소리가 들렸다. 홍씨는 여승무원의 타다 만 셔츠를 나무에 매달아 흔들기 시작했다. 선회하던 헬기가 멈칫 다가서더니 밧줄 사다리를 내려보냈다. 그 후의 상황은 홍씨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홍씨가 의식을 회복한 것은 구조후 5시간여만인 상오 9시께 미 해군병원 병상에서였다.<괌=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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