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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정체’ 밝혀졌다/연대 설성경 교수 관련자료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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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 ‘정체’ 밝혀졌다/연대 설성경 교수 관련자료 공개

입력
1997.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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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0년 절제사 홍상직 서자로 출생/왕조실록·만성대동보 등에 기록/족보에선 가문명예탓 삭제한듯허균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모델이 됐던 실존인물 홍길동의 정체가 연세대 국문과 설성경 교수의 연구로 밝혀졌다. 결론은 『홍길동은 정3품 무관직인 절제사를 지낸 홍상직의 서자이며 역시 정3품직인 상호군 일동의 이복동생이다. 1450년경 전남 장성군 황룡면 아치실에서 태어났으며 무예와 도술을 익혔다. 길동은 50대에 충남 공주 무성산성(일명 홍길동산성)을 중심으로 무리를 모아 본격적인 의적활동을 시작했으며 연산군 6년 1500년 10월에 붙잡혀 의금부에 투옥됐다』

설 교수는 지난 21일 한국고전문학회 월례학술발표회에서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만성대동보」 등 관련자료 일체를 공개했다. 대동보는 명문가의 족보들을 모아 성씨별로 주요인물만을 기록한 것으로 1920년경 편찬됐다. 여기에는 길동이 형 일동과 함께 홍상직의 아들로 기록돼 있다. 반면 조선조말에 편찬된 「남양홍씨세보」는 홍상직의 아들로 일동과 귀동만을 기록하고 있다. 설 교수는 여러 남양홍씨 족보 가운데 만성대동보의 자료가 된 것은 서자인 길동을 그대로 기재한 반면 「남양홍씨세보」는 그의 도적행위 등을 감안, 삭제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동보는 특히 길동에 대해 『환술로 유명하다』는 설명까지 달고 있다.

문제는 조선왕조실록을 따른다면 홍상직은 1426년 이전에 사망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1500년에 붙잡힌 홍길동이 그의 아들일 수는 없다. 실록은 길동의 이름도 길동으로 표기하고 있다. 설 교수는 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홍상직은 역모혐의로 체포됐다 풀려난 적이 있다. 따라서 그는 1426년께 사망한 것이 아니라 불안한 정세를 감안, 지방으로 숨어들었고 이후 1450년께 만득자로 길동을 얻었을 것이다. 실록의 기록은 홍씨 집안의 체면 등을 감안해 모호하게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설 교수는 실존인물 홍길동의 말년에 대해서도 『실록에는 붙잡혔다는 기록만 있을 뿐 그후 처리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며 『탈옥인지 방면인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류큐(유구·지금의 오키나와)의 구메지마(구미도)나 미야코지마(궁고도)에 상륙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한다. 홍길동이 군사들과 함께 건설한 이상향 「율도국」은 오키나와였으며 홍길동전은 90%이상 사실 그대로를 담았다는 얘기다.<이광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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