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메르 루주 반란세력에 투항… 정부측에 인도 가능성【프놈펜 UPI AFP=연합】 캄보디아 크메르 루주 반군 지도자 폴 포트가 북부 정글에서 크메르 루주내 반란세력에 투항했다고 캄보디아 고위 군관계자가 18일 밝혔다.
넥 분치헤이 참모차장은 『폴 포트가 이날 하오 북부 안롱벵에서 부인 및 인질로 잡고 있던 온건파 키우 삼판, 타목 장군 등 15명과 함께 반란세력에 투항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반란세력이 폴 포트를 국제법정에 세우도록 그의 신병을 인도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폴 포트는 75∼79년 집권기간에 캄보디아인 200만명을 집단학살한 주범으로 지목돼 있다.
분치헤이 참모차장의 발표는 이날 크메르 루주측 라디오 방송이 『폴 포트가 투항했으며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고 보도한 직후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폴 포트의 투항설에 대해 아직 어떠한 증거도 없다며 의문을 표시했다.
◎캄보디아 정국 앞날/라나리드훈센 두 총리 권력암투 노골화 가속
크메르 루주 반군지도자 폴 포트가 18일 투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앞으로 그의 운명과 캄보디아 정국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폴 포트는 현재 정부와 협상을 추진해 온 크메르 루주내 온건파에 의해 억류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온건파 반군은 따라서 폴 포트를 일단 정부측에 넘김으로써 자신들의 사면을 얻어내려 할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94년 입법을 통해 「폴 포트와 결별하지 않은 반군은 사면할 수 없다」고 규정, 폴 포트를 제외한 반군에 대해서는 사면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노로돔 라나리드 캄보디아 제1총리측도 반군이 『국제법정에 세우도록 폴 포트의 신병을 인도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폴 포트가 200만명을 학살한 반인륜적 범죄자인 점을 감안하면 그에 대한 단죄는 국내·국제법적으로 피하기 어렵다. 인권단체들도 폴 포트를 국제법정에 세우도록 촉구해 왔다.
이와관련, 유엔 대변인은 18일 『폴 포트에 대한 공식기소 요청이 아직 없었으며, 접수된다 하더라도 안보리에서 폴 포트의 우호국이었던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폴 포트의 투항으로 공동의 적이 사라짐에 따라 정국 주도권을 둘러싼 라나리드측과 훈센 제2총리측간의 암투도 정면대결로 치달을 전망이다. 크메르 루주가 사면된 뒤 제도 정치권으로 수렴될 경우, 이와 연대하기 위한 양측의 공작과 역공작이 표면화한다는 것이다.
한발 뒤져있는 훈센측은 『반군을 복권시킬 경우 라나리드 총리를 프놈펜에서 축출할 것』이라며 벌써부터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폴 포트 누구인가/75년 집권후 200만명 학살/도살자 악명
캄보디아 「킬링 필드의 도살자」 폴 포트(69)는 민족해방운동가에서 극단적 공산주의자로 타락한 광기의 혁명가다. 부농집안 출신인 그는 49∼52년 프랑스 유학시절 공산주의 사상에 빠져 들면서 오도된 혁명가의 길로 들어섰다. 공산주의 혁명·조직가로서 초창기 그의 능력은 53년 귀국 후 9년만에 캄보디아 공산당 총서기로 취임한데서 보듯이 탁월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아돌프 히틀러와 마오쩌둥(모택동)의 부정적인 측면이 기묘하게 착종된 인물이다. 75년 론 놀 정권을 타도하고 집권한 뒤 「농업사회주의」기치아래 시대착오적인 원시공산사회 건설에 나섰다. 그는 이 과정에서 도시인 등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25%에 달하는 200만명을 학살하는 악마성을 발휘했다. 그는 79년 베트남 침공으로 실권, 북서부 밀림으로 피신한 후 17년간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다. 80년대 말 표면상 지도권을 이양한 후 수렴청정을 통해 혁명가가 아닌 반군 지도자로서 마지막 권력에 집착해 왔다.<배연해 기자>배연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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