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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털 사자’/최승호 창작 우화집/해학 가득찬 이야기 보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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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털 사자’/최승호 창작 우화집/해학 가득찬 이야기 보따리

입력
1997.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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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쇼를 하듯 공작새가 화려한 날개를 펼치고 있을 때 공작새 뒤에서 누가 말했다. 여기서는 똥구멍이 잘 보이는구나」(「공작새」 전문).우화의 주인공인 동물은 인간사를 비웃는다. 이리 뒤집고 저리 헤집어, 그들의 눈으로 본 사람을 우스운 꼬락서니로 만들어 버린다. 그 우스움 뒤에는 사람살이의 어리석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경고가 숨어 있다.

시인 최승호(43)씨가 이같은 이야기를 모은 창작우화집 「황금털 사자」(해냄간)를 냈다. 오늘의 작가상, 김수영문학상, 이산문학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에 「즉물적 관찰력과 직관의 시인」이라는 평을 들어온 최씨. 그가 시로 미처 풀어놓지 못한 해학이 가득찬 이야기보따리다.

책에는 모두 97편의 짤막한 우화가 실려 있다. 기린, 비단잉어, 개미, 올빼미, 반달가슴곰, 앵무새, 하마, 망둥이, 개똥벌레, 코뿔소, 고슴도치, 들장미, 제비꽃, 눈사람 등이 주인공이다.

난생 처음 바다를 보게 된 닭 한 마리. 모래톱의 조개들에게 『바다의 비밀을 말해 봐』라며 부리로 조개껍질을 쪼아대며 물었지만 조개들은 입 벌린 놈이나 다문 놈이나 하나같이 묵묵부답이었다. 닭은 바다를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그것 참 이상하군. 입 벌린 놈들은 죄다 혀가 없고, 혀 있는 놈은 입을 꽉 다물고 있는 것 보면 바다의 비밀이 엄청나긴 엄청난 모양이야』(「바다의 비밀」에서).

굳이 현실 비판이나 반어, 패러디 같은 의미를 갖다붙이지 않더라도 최씨의 우화들은 상상력이야말로 창작의 마르지 않는 원천임을 보여준다. 그는 『문명은 뭇 생물을 멸종시키며 발전하는지 모르겠으나 현대인은 퇴행을 거듭하며 갈수록 창백해지는 것은 아닌지. 자연과의 친화력, 교감, 순수한 본능과 직관의 광휘를 현대인은 잃어버렸다』며 『가상현실인지 현실가상인지 현란한 환영의 시대에, 교묘한 헛 것보다는 질박한 짐승의 더운 피를 그리워하듯이 이 우화들을 썼다』고 말했다.<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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