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힐튼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치러진 제33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은 한국공연문화의 밝은 미래를 확인한 의미깊은 자리였다. 무대와 영상문화를 아우른 국내 유일의 예술축제이자 한해동안 예술인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그 성과를 결산하는 행사에 걸맞게 각 분야에 걸쳐 21세기 대중문화를 이끌어갈 인재들이 평가를 받았다. 수상작과 수상예술인들을 소개한다.<편집자 주>◎연극대상 김정숙씨/“참전용사들이 좋아하고 성원 보내줘 큰 보람 느껴”

베트남전을 재조명한 뮤지컬 「블루 사이공」의 희곡으로 연극부문 영예의 대상을 받은 김정숙(36·극단 모시는 사람들 대표)씨는 『이렇게 권위있는 큰 상을 받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89년 극단을 창단, 지금까지 10여편을 무대에 올렸는데 이 작품이 처음으로 백상예술대상 3개 부문상을 차지하는 등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다.

작품구상은 94년 고엽제 환자들의 참혹한 실상을 보여주는 사진전 관람이 계기가 됐다. 그는 『베트남전을 멋있게 그린 영화들과는 아주 다른 실상이 담긴 사진을 보면서 김추자씨 노래에서 화환 걸고 돌아온 김상사의 오늘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주인공 김상사가 사랑했던 베트남여인의 음모로 전투에서 한국군이 엄청난 피해를 당하고,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온 김상사의 라이따이한 아들 북청과 고엽제 후유증으로 태어난 비정상적 딸 신창이 등장하는 등 참전용사의 어제와 오늘을 통해 베트남전의 의미를 되짚고 있다. 전쟁의 뒤안길과 마무리되지 않은 현재를 부각시킨 작가의식이 높이 평가됐다. 김씨는 『특히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과거의 용사들이 좋아하고 성원을 보여줘 큰 보람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아버지는 고구마만 보면 거제도 포로수용소가 생각나신다고 하셨어요. 이산가족인 부모님의 아픈 기억들은 저의 사춘기를 공포심과 침울함으로 채웠지만 커갈수록 역사 속에서 눈물로 얼룩진 많은 어버이의 얼굴을 떠올리게 됩니다』 82년 극단 에저또를 통해 연극에 입문한 김씨는 극단 창단 후 「인간과 역사」라는 일관된 주제의식을 갖고 극작·연출활동을 해 왔다.<김희원 기자>

◎TV대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우리시대 가족의 소중함 감동으로 깨우친 드라마

MBC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연출 박종, 극본 노희경)은 가족과 가정의 회복을 잔잔한 목소리로 주장한 드라마다.

무뚝뚝한 남편, 버릇없는 아이들, 시어머니 수발로 젊은 시절을 바치고 남편이 퇴직하면 전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소박한 꿈을 가진 주인공 인희(나문희)에게 말기암 선고가 내려진다.

인희는 평생 자신을 위해서는 살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러서도 스스로를 비워내는 우리들의 어머니. 한 지붕 밑에 살면서도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가족들은 인희의 자리를 새삼스럽게 깨닫고 「이별」을 준비한다.

연출을 맡은 박종 PD는 MBC 「베스트셀러극장」 「한지붕 세가족」 등을 통해 섬세한 묘사로 역량을 인정받은 연출가. 그는 『가족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어도 결국은 용서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아닌가. 삭막한 시대에 가족을 통해 가슴이 따뜻해질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2, 3일 MBC가 창사특집극으로 방영한 이 드라마는 「어머니의 배우」 나문희씨의 원숙한 연기로 더욱 빛이 발했다. 나씨는 영원한 그리움의 대상인 어머니역을 실감나게 소화, 시청자들을 모처럼 펑펑 울렸다.

특히 죽음을 앞둔 나씨가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의 몸을 씻어주면서 『어머니, 나 죽으면 혀 깨물고 죽어서라도 나를 따라와. 누가 당신을 돌봐드릴꺼야?』라고 울먹이는 대목은 인상적이었다. 재방요청의 목소리가 높아 지난해 12월24일에 4부작이 잇따라 방영됐다.<박천호 기자>

◎영화작품상 ‘초록물고기’/뿌리잃은 도시의 밤 통해 ‘한국식 느와르’ 연 수작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아버지마저 없는 4형제의 막둥이(한석규). 순진한 그가 고향인 일산과 서울 영등포 나이트 클럽을 무대로 우리의 현실, 꿈과 절망, 존재방식을 섬뜩할 정도로 차분히 보여준 한국식 느와르다.

신도시가 건설되면서 밀려난 토박이들은 삶의 터전은 물론 「가족해체」라는 위기까지 맞는다. 막둥이의 꿈은 지체장애자인 큰형, 자포자기로 알코올에 빠져 사는 경찰인 둘째 형, 트럭으로 계란을 파는 셋째 형을 한데 묶을 수 있는 공간인 작은 식당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막둥이가 제대를 하면서부터 겪는 사회의 폭력과 비리, 가족간의 대화 단절을 지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소설가 출신 이창동 감독은 누구 편도 들지 않았다. 그냥 그것이 「우리의 자화상」이자 「현실」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에 대한 찬사는 소재가 별나서도, 얘기가 아주 탄탄해서도 아니다. 몇년째 허황된 코미디와 외국영화를 모방한 정체성 없는 도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우리 영화의 상황에서 「초록물고기」는 비록 어두운 곳만 고집했지만 우리의 주변을 섬세하고 성실하게 헤엄쳐 갔다. 우리 것을 확인하는 작업만으로도 한국영화는 얼마든지 새로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 셈이다.<이대현 기자>

□심사위원(각 부문 가나다 순)

◆연극부문=구히서(연극평론가·연극부문심사위원장) 김윤철(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서연호(고려대 교수) 설희관(한국일보 문화부장) 오태석(극작가) 이혜경(연극평론가) 임진택(연출가)씨.

◆영화부문=김종원(영화평론가·시인) 김지미(한국영화인협회 이사장) 신대남(일간스포츠 부국장 겸 연예2부장) 이봉운(영화평론가) 이충직(중앙대 교수) 유현목(영화감독·대한민국예술원 회원·영화부문 겸 전체 심사위원장) 조희문(상명대 교수)씨.

◆TV부문=김기태(서강대 방송아카데미 교수부장) 김영석(연세대 교수) 김의명(일간스포츠 연예1부장) 신상일(방송평론가) 오도광(〃) 이경순(〃·방송위원회 심의위원) 임학송(서울예전 교수·TV부문 심사위원장)씨.

◎백상예술대상 시상식 스케치/관객 1,300여명 몰려/초록물고기 상복터져/김혜수 파격패션 눈길/TV대상 2차경합까지

○각계 인사 대성황 이뤄

○…24일 하오 6시부터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33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은 1,300여명의 관객이 몰려 대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후원사인 (주)대우전자 배순훈 회장을 비롯, 조세형 국민회의총재권한대행 신영균 신한국당의원, 문덕수 문예진흥원장, 이종덕 예술의전당 사장, 박규채 영화진흥공사 사장,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씨 등 유명인사들이 참석, 수상자를 축하했다.

○보도진 200여명 취재 분주

○…방송 영화 연극계의 스타들이 대거 참석한 시상식은 이들을 취재하기 위한 보도진 200여명이 몰려들어 마치 종합 기자회견장을 방불케 했다. 지상파방송사, 케이블TV, 연예잡지기자들은 행사장 한쪽 구석에서 평소 만나기 힘든 스타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분주한 모습.

○이스트필름 축제분위기

○…영화부문 5개 부문상을 휩쓴 「초록물고기」의 제작사인 이스트필름은 온통 축제분위기. 공동대표인 배우 명계남씨는 『자금이 부족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배우들과 스태프가 합심해 영화를 완성해 놓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분에 넘치는 평가를 받아 몸둘 바를 모르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가슴 비치는 옷차림 카메라 세례

○…지난해 시상식에서 가슴이 훤히 비치는 파격적인 차림으로 카메라세례를 받았던 탤런트 김혜수씨는 올해에도 과감한 패션으로 시선을 끌었다. 그는 젖가슴만 살짝 가리고 등은 허리까지 완전히 노출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사진기자들의 표적이 됐다.

○오지혜 약혼자가 꽃다발 전달

○…연극부문 여자신인연기상을 받은 오현경·윤소정 부부의 딸 오지혜(29)씨에게 약혼자인 연극배우 최덕문(27)씨가 꽃다발을 전달. 이들은 2년전 극단학전에서 「개똥이」 공연 때 처음 만난 뒤 「지하철 1호선」 「비언소」 「평화씨」 등에 잇달아 출연, 사랑을 키웠는데 올 가을 결혼식을 올린다. 연극계 후배인 최씨는 『오씨에게 연기지도를 받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영화부문 1시간 격론

○…본행사에 앞서 이날 하오 3시부터 서울 힐튼호텔 한라산룸에서 열린 대상심사는 심사위원간의 격론으로 시종 뜨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TV부문의 경우 작품상을 차지한 MBC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과 연출상에 선정된 KBS 신TV문학관 「길위의 날들」이 2차투표까지 가는 경합을 벌인 끝에 결국 「세상에서…」로 결정됐다. 영화부문은 1시간에 걸친 격론에도 불구하고 대상을 내지 못했다.<이대현·황동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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