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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나홀로 유학’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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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나홀로 유학’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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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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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때 외국서 공부해야 영어 제대로 배운다/부모성화로 50여명 유학/이중 20여명은 혼자 하숙/중고생 도피성 유학도 증가/술집·카지노 전전 탈선에 교민사회 골머리/지난해 50여명 ‘강제출국’조기유학붐을 타고 중·고등학생 뿐 아니라 초등학생들의 뉴질랜드 유학이 잇따르고 있다.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중·고 유학생은 95년 500여명에서 지난해 1,000여명으로 늘었다. 오클랜드분관 김상훈 총영사는 『어학연수생과 대학생까지 합치면 유학생은 3,800여명에 달하고 매년 50%이상 늘어나고 있다』며 『최근엔 10살 내외의 초등학교 유학생들까지 눈에 띈다』고 말했다.

현재 뉴질랜드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한국인 유학생은 50여명이지만 앞으로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취재팀이 만난 박영준(12)군도 초등학교 5학년때인 지난해 10월 고등학생인 누나들과 함께 뉴질랜드땅을 밟았다. 「어릴때 외국에서 공부해야 영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는 부모님 뜻에 따른 것.

외롭기는 하지만 박군은 이곳이 서울보다 좋다.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제일 기쁘다. 서울에서는 방과후에 학원을 3군데나 다녔다. 학교 수업도 거의 놀이 같아 재미있다. 초등학교 6학년을 건너뛰어 중학생이 된 박군은 현재 누나들과 떨어져 오클랜드 교외의 교민집에서 혼자 하숙하고 있지만 무섭거나 불편한 점은 없다. 사람들에게 길을 묻기도 하고 슈퍼마켓에서 물건도 산다. 아직 영어가 익숙하지 않아 물건을 살 때마다 곤란한 경우가 많지만 그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엄마가 보고 싶지만 참을 수 있어요. 매일 통화하고 3개월마다 엄마가 찾아오기로 했어요. 열심히 공부해 로마에서 신부님이 되는 게 꿈이에요』

박군처럼 부모와 떨어져 혼자 학교에 다니는 한국학생은 초등학생만도 대략 20여명. 나머지는 어머니와 함께 살거나 친척집에서 지낸다. 뉴질랜드 잉글리시 아카데미 최정석 원장은 『초등학생 조기유학은 중·고생 도피성 유학에 비해 오히려 권장할 만하다』며 『잘 보살피기만 하면 전교 1, 2등을 다툴 정도로 두각을 나타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교민들은 『조기교육이란 명목으로 어린아이를 이국땅에 혼자 두는 것은 정서적 조화를 도외시한 지나친 교육열』이라고 비판했다. 최근엔 방학을 이용해 1, 2개월 코스로 영어를 배우는 초등학생 어학연수도 늘었다. 부모가 동행해 호텔에서 함께 기거하거나 교민집에서 집단으로 하숙한다.

한편으로 교민사회가 늘어난 도피성 중·고교 유학생들의 탈선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실은 안타까웠다. 대개 한국에서 진학이나 학교생활에 실패해 문제아로 남느니 영어라도 배우는 게 나으리라는 생각에서 유학길에 오른 학생들. 뉴질랜드 대부분의 학교가 입학금만 내면 입학을 허가해 최근들어 이런 학생들이 부쩍 늘었고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들은 영어로 의사소통이 안돼 공부를 젖혀두는 것은 물론이고 백인학생들과 제대로 사귀지도 못한다. 교민들조차 자식들에게 『유학생들은 질이 좋지 않으니 어울리지 말라』고 가르친다. 주변인으로 겉도는 이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술집이나 카지노 등을 전전하며 남녀혼숙까지 한다. 대화단절로 자폐증에 걸리거나 하루종일 학교화장실에 앉아 소설책만 읽는 학생도 있다. 학교출석을 하지 않거나 문제를 일으켜 강제출국당한 청소년 유학생이 지난해 50명을 넘었다.

지난해 12월23일 오클랜드 한국대사관 분관에서는 대사관과 교민회가 공동으로 「한인 청소년활동 진흥위원회」를 발족했다. 밤거리를 헤매는 청소년들을 교민들이 나서 선도하고 교포가족과 유학생간의 자매결연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유학생들의 탈선을 예방하기로 했다. 그러나 교민들은 부모들이 사전 어학연수 등을 통해 아이의 적응도를 확인해야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다고 입을 모았다.<오클랜드=배성규 기자>

◎‘좁은 문’된 이민길/거액투자자 제외하고는 ‘영어시험 통과’ 새 규정/이민국 사무실도 한국서 홍콩으로 이전

뉴질랜드 이민이 어려워졌다. 지난해 10월 발효한 새로운 이민 규정 때문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이민 희망자들은 거액의 투자이민을 제외하고는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영 연방국가에서 시행하는 IELTS시험에서 6.0이상의 점수를 받아야 한다. 6.0은 TOEFL시험의 520점 정도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TOEFL 응시자 평균점수가 500점 미만인 점을 감안하면 웬만한 실력의 대졸자들에게도 쉽지않은 점수다. 여기에는 뉴질랜드 대사관 관계자와의 면접을 통한 영어 읽기 듣기 및 작문시험도 들어있어 영어회화에 약한 한국인들에게는 「공포의 관문」이 아닐 수 없다.

그결과 지난해 10월부터 12월말까지 뉴질랜드 이민 신청자는 전년 동기대비 10분의 1이하인 10명 이내로 급감했다는 게 주한 뉴질랜드 대사관측의 잠정 집계이다. 90년 이후 뉴질랜드 이민이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난 데 비추어 영어시험 시행후 겁을 먹은 다수의 희망자들이 이민을 포기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주한 뉴질랜드 대사관은 새로운 이민규정 발효후 아예 홍콩으로 이민국 사무실을 옮겨 버렸다. 앞으로 홍콩에 있는 이민국에서 신청서 접수 등 절차를 밟아야 해 뉴질랜드 이민이 한층 불편하게 됐다.

주한 뉴질랜드 대사관은 영어시험을 「필수과목」으로 신설한 배경에 대해 『영어가 이민자의 뉴질랜드 정착과 경제활동을 위한 기본 요건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한국계 이민쿼터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대신 올 7월 중국반환을 앞두고 뉴질랜드로의 거액투자이민이 급증하고 있는 홍콩의 이민쿼터를 늘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것. 물론 이런 정책은 그동안 한국계 이민의 현지 정착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는 뉴질랜드정부의 판단이 작용한 결과로도 비쳐진다.

그러나 영어를 못한다고 뉴질랜드 이민길이 불가능해 진 것은 아니다. 300만뉴질랜드달러(한화 약 18억원) 이상을 가져갈 수 있으면 평점 10점을 그냥 따게 돼 영어점수와 관계없이 이민을 갈 수 있다. 그 이하의 돈이라도 투자액에 따라 필요한 영어점수가 약간씩 하향조정된다. 어쨌든 보통사람들에게 뉴질랜드 이민은 이제 「좁은 문」이 돼 버렸다.<유성식 기자>

◎에버그린 라이프 이형수 사장/녹용가공산업 개척자/70년대말 한국인 최초로 진출/한국에 수출 등 연매출 40억원/“녹용 및 사슴박물관 여는게 꿈”

녹용 전문업체 「에버그린 라이프」의 이형수(50) 사장은 뉴질랜드 녹용가공산업의 개척자. 뉴질랜드산 녹용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70년대말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녹용가공업에 뛰어 들었다.

한국에서 의류 및 한약 무역을 하던 그는 78년 홍콩에서 중국인들이 뉴질랜드산 녹용을 대량 수입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당시 뉴질랜드에는 사슴이 육용으로 대량 사육되고 있었지만 녹용은 거의 버려지고 있었다. 생녹용을 싼값에 들여와 많은 이익을 본 그는 아예 현지에 녹용가공공장을 설립키로 결심하고 호키티카에 최초의 합작기업을 세웠다. 이씨는 녹용건조기술과 기계를, 합작사인 메어그룹은 부지와 건물을 댔다.

『회사설립에 어려움이 많았어요. 당시 한국엔 외환송금규제가 있어 단시간내에 2만달러를 마련해 송금한다는 것이 불가능했죠. 결국 홍콩 고객의 돈을 빌려 결제를 하고 기계는 한국에서 만들어 운반했어요. 영주권도 문제였어요. 그때만 해도 아시아인의 영주는 어려웠거든요. 오랜 실랑이 끝에 합작조건으로 동생이 영주권을 받아 공장을 가동했어요』

공장가동 1년만에 자본금 2만달러와 이자를 모두 갚을 정도로 사업은 성공적이었다. 이씨는 공장을 크라이스트처치로 옮기면서 가공시설을 확장했다. 현재는 연간 60톤의 녹용을 생산해 70%는 한국으로, 나머지는 홍콩이나 중국으로 수출한다. 연간매출액이 40억원에 달한다.

70년대 후반만해도 3개에 불과하던 녹용가공업체가 현재 22개에 달하며 이중 10개는 한국교민이 운영하는 업체다. 『연간 4개월은 뉴질랜드에서 보냈어요. 3년전 오클랜드에 새공장을 차리면서 아내와 아이들을 데려왔죠. 남들은 쉬는 날 골프나 낚시로 소일하지만 저는 공장일로 눈코뜰 새가 없어요. 건조가공 기계에 이상이 생겨 한밤중에 공장으로 달려 간 게 한두번이 아닙니다』

지난해에는 사업을 확장해 로얄제리 꿀 알로에 자라 등 건강식품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녹용을 달여먹는 번거러움을 덜고 현지 백인들의 수요도 유도하기 위해 녹용과 약초의 분말제품도 선보였다. 현지 TV에 광고도 하고 중국 동남아 미국 시장까지 판매망을 넓혀가고 있다.

그의 꿈은 녹용 및 사슴박물관을 여는 것. 『세계 모든 종류의 녹용과 녹각, 사슴박제 등을 모아 개인 전시관을 열고 싶습니다. 교민사회에 적극 참여, 기여하고 싶기도 하고요』<오클랜드=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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