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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패배주의/이윤택 연극연출가(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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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패배주의/이윤택 연극연출가(1000자 춘추)

입력
1997.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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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혼돈이 도래할 때나 경제 위기가 올 때마다 찍소리 못하고 피해를 보는 것은 정작 문화예술분야인 것 같다. 정치상황이 더 극적인데 연극을 볼 이유가 어디있으며, 먹고 살기 힘든데 어떻게 책을 사 보느냐는 것이다. 문화수용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논리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화 창조자의 입장에서 결코 승복할 수 없는 것이 이런 현실적 논리라고 생각한다.나는 이렇게 반문한다. 정치상황이 연극보다 더 극적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연극은 어떤 갈등과 위기와 파국이 와도 그 혼돈된 세계를 극복하는 비전을 제시한다. 제대로 된 연극은 지금의 현실을 뛰어 넘는 삶의 방향과 미래에 대한 패러다임이 있다. 지금의 세상이 혼돈스러울수록 시민들은 극장에 가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먹고 살기 힘든데 어떻게 책을 사보느냐고? 안네 프랑크가 다락방에 숨어 죽음의 공포와 싸우면서 긴 세월을 버틸 수 있었던 식량은 무엇이었는가. 빵 뿐이었을까? 아니다. 그 유대인 소녀는 독서와 사색, 그리고 일기를 쓰면서 현실적 암울함을 이겨냈다.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세상이 어지럽고 형편이 쪼들릴수록 책을 읽고 극장문을 두드리자』 책과 극장 속에 현실적 식량은 없지만 지금의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이 있다.

러시아에서는 교수 월급이 100달러, 우리돈으로 8만원 정도인데 볼쇼이극장 입장료가 역시 100달러 정도이다. 그러나 볼쇼이극장은 항상 러시아 자국민 관객들로 가득 차서 외국인들이 볼쇼이극장 표를 사기가 극히 어렵다. 그들은 1년중 한번은 볼쇼이극장을 찾는 것이 삶의 습관처럼 되어있다고 한다.

지금의 형편이 한 치 앞을 예견할 수 없을 정도로 혼돈스럽지만 볼쇼이극장에 들어서면 영광스러운 슬라브민족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적 공황 속에 놓여있는 러시아 시민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은 러시아가 낳은 고전문학과 위대한 공연예술 뿐인지도 모른다. 정치 경제와 다른 문화의 힘은 여기에 있다. 문화 또한 이렇게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독자적 에너지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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