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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정국의 아이러니/김병국(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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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천정국의 아이러니/김병국(한국논단)

입력
1996.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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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계절이다. 세대교체의 논의가 다시 정치판에 범람하고 정당마다 「명망가 모시기」와 「신세대 발탁」이 한창이다. 무엇 때문인가는 자명하다. 한국의 정당은 공론과 정론의 산실로서 기능한 적이 없다. 정책에 대한 논의에는 무능하고 정쟁의 확대에는 탁월한 「붕당」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그러한 정당은 사회를 파편화시킨 망국적 지역감정의 온상이자 부정과 비리를 확대재생산해온 정경유착의 핵심고리이다.이처럼 초라한 한국정치의 현실에서 명망가 모시기와 신세대 발탁의 공천정국은 그 당위성을 얻고 있다. 갈등과 정쟁과 부패의 악순환에서 탈출하고 싶은 국민적 열망이 거기에 실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직책의 재구성이 한국정치의 기본과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을 제시할지는 미지수이다. 현재의 공천정국은 문제의 근원을 비켜가고 있다. 민주대 독재의 대결구조에 지역갈등을 가미시켜 세력을 불려온 세 명의 「카리스마」가 건재하기 때문이다. 정쟁은 거기서 기원한다. 지역맹주가 서로에게 품어온 불신과 질투와 편견이 여전한데다가 그 추종세력 역시 정치권 내에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다.

카리스마가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한 정당이 조직책을 재조정한다고 해서 한국정치의 기본 공식이 달라질리 만무하다. 오히려 명망가와 신세대는 세 카리스마가 최후의 승자를 가리기 위하여 동원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판의 성격이 변화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달라진 것은 단지 총선에서 승자를 가리는 방법뿐이다. 농촌시대에 「40대기수론」을 주창하였던 세대가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 세계화의 시대를 주관하고 있는 모순적 상황에 사회 일각이 세대교체론으로 맞서자 변화의 모양새를 갖추고 민심을 무마하기 위하여 명망가 모시기와 신세대 발탁에 나서는 것이다. 현재의 공천정국은 세대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카리스마의 정쟁을 지속시키기 위한 것이다.

○정치적 대안의 실종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명망가와 신세대는 자신의 이상을 실천하기 위하여 정계에 진출할 태세이다. 「색깔」없는 정치판이 무지개빛을 발하고 「비전」없는 정당이 대안을 제시할 수 있으려면 「소신」있는 시민이 나서야 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상이 결실을 볼 것 같지는 않다. 철학을 가진 정치인의 수에 비례하여 정치판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참여의 구체적 결과는 오히려 「구조」가 결정한다. 작금의 상황에서는 명망가와 신세대 역시 절대적 카리스마에 휘둘려 소신을 펴보지 못한 기성 정치인의 전철을 밟을 위험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현재 각 정당은 당선 가능성에만 중점을 두고 공천을 하고 있다.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인사라면 공천대상이고 카리스마의 약점을 상쇄시켜줄 인물이라면 발탁대상이다. 아울러 사회의 어느 한 계층을 상징하는 인사가 어느 정당의 깃발 아래에 서면 모두가 동일한 이미지의 「시민후보」를 찾아 나선다.

결과는 대안의 실종이다. 정당마다 보수와 개혁성향의 후보를 가리지 않고 발탁하고 「신세대」와 「구세대」를 함께 섞어 놓는다. 총선에서 모두의 지지를 구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그러다보니 「무엇을 추구하는 정당인가」가 불확실하고 「다른 정당과 어떻게 다른가」가 불분명하다. 명망가와 신세대는 회색빛의 정치판에 이 색깔 저 색깔을 칠해 넣기 위해서 정치를 시작하지만 개인의 색깔은 정당이라는 구조의 색깔로 승화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모방의 공천정국 탓에 정당간의 차별성은 더욱 축소되고 있다. 다가오는 총선은 시민이 여러가지 대안을 저울질하면서 지지할 정당을 찾는 이성적 선택의 순간이 되지 못할 전망이다.

○상처받은 순수성

그러나 공천정국의 최대 피해자는 역시 명망가와 신세대가 남기고 가버린 시민사회이다. 『신선한 소리를 내고 바른 말을 하던 것이 결국은 정계에 진출하기 위해서였다』는 냉소적 분위기가 사회 저변에 확산되고 있다. 그러한 불신은 공천권을 따낸 「시민후보」만이 고민할 문제가 아니다. 국민은 명망가와 신세대중 사회를 「떠난 자」와 거기에 「남은 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모두가 하나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진지한 자세에서 명망가와 신세대를 지켜보지 않을지 모른다. 떠난 자가 자신이 시민사회 내에서 키워온 이상을 정치판에 불어넣으려 할 때 그 이상은 순수성을 잃고 남은 자의 시민운동은 위축되는 것이다.

개혁의 길을 고민할 때이다. 명망가와 신세대는 카리스마가 깨지고 상식이 통하는 정치가 펼쳐질 때까지 정쟁위주의 정치판 「밖」에 남아 걸음마단계의 시민운동을 키우고 민생중심의 정치를 구현하여야 한다. 시민사회가 견제의 능력을 갖추게 되면 붕당정치는 설 자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고려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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