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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위기의 여자」(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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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위기의 여자」(장명수 칼럼)

입력
1995.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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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장 산울림이 개관 10주년 기념공연 시리즈의 하나로 8월부터 공연중인 「위기의 여자」(시몬 드 보부아르원작. 정복근각색. 임영웅연출)는 여성관객들로 연일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 막이 오르자 객석은 숨죽이며 배우들의 대사 하나, 표정 하나를 해면처럼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한시간반 동안의 무서운 집중, 공연이 끝났는데 관객은 여전히 생각에 잠겨 있다.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남편의 고백을 들은 모니크, 충격으로 휘청거리는 그에게 남편과 두 딸과 정신과의사는 『가족만을 위해 헌신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은 것이 당신의 가장 큰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한 여성이 아내와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하루 24시간 헌신하지 않고는 유지될 수 없는 것이 가정이라는 것을 당신들이 알고나 있어요? 한평생 가족을 사랑하고 희생하는 것이 무슨 죄라도 된다는 거예요?』라고 모니크는 항변한다.

『남편은 돌아올 지도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내 앞에는 나의 생이 기다리고 있어요. 그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이제 나는 잘 알고 있어요』라고 긴 방황에서 돌아온 모니크는 객석을 향해 고백한다. 남편이 떠난 불 꺼진 빈집으로 들어가는 모니크, 두렵지만 홀로 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이제 더이상 위기의 여자가 아니다.

보부아르가 이 소설을 발표한 것은 1967년, 한국에서 번역출판된 것은 75년(오징자번역.정우사), 산울림무대에서 연극으로 초연된 것이 86년이었다. 작품발표, 국내출판, 연극화 사이에는 각기 10여년의 간격이 있고, 이번 공연도 초연후 9년만이다. 그러나 그 세월들은 이 작품을 녹슬게 하지 못했고, 늘 뜨거운 공감이 있었다. 너무 평범하여 진부하기까지 한 「남편의 외도와 여자의 홀로서기」라는 소재가 실은 여자의 영원한 과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86년 이 연극이 처음 공연됐을 때, 극장 앞에는 평소에 연극을 보지 않던 주부관객들이 연일 장사진을 쳤고, 그것은 「여성연극」의 붐을 예고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 사건 이후 산울림은 여성연극의 명소가 되었고, 산울림 무대를 통해 여성관객들을 「오빠부대」처럼 열광케 하는 기라성같은 여배우들, 박정자·윤여정·윤석화 등이 더욱 인기를 높였다.

어둠속에서 관객들은 모니크를 따라 흐느끼고, 남편의 뻔뻔스런 대사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박정자·이주실·윤여정에 이어 네번째로 모니크역을 맡은 손숙은 동년배의 여성팬들에게 둘러싸여 아름답게 열연하고 있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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