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최악혼란… 죽을고비 수차례/이번엔 대통령제 반대파에 피습도구소련의 외무장관으로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과 함께 동서냉전 시대를 마감시킨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그루지야공화국 최고회의의장(대통령·67)이 29일 폭탄테러 공격을 받았으나 다행히 큰 화는 면했다.
구소련시절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화려한 외교활동을 했던 그는 92년부터 고향인 그루지야를 통치해왔으나 그동안 항상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숨가쁜 곡예를 해왔다.
그루지야는 91년4월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뒤 민주선거를 통해 정치범이었던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아가 초대대통령으로 선출됐으나 8개월뒤 군부 쿠데타로 실각하는 등 정국이 혼미를 거듭했다.
당시 그루지야 국민들은 그루지야 공산당 제1서기 출신의 셰바르드나제가 돌아와 이 난국을 수습해주기를 바랐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인 셰바르드나제는 쿠데타와 분리독립요구에 따른 내전, 조직범죄등 최악의 혼란상이 연출되는 그루지야를 어렵게 이끌어 왔다.
그가 그동안 죽음의 고비를 넘긴 것도 수차례에 달한다.
93년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압하지아 반군들의 공격으로 휴양도시 수후미가 함락직전에 놓였을 때 그루지야인들의 안전철수를 위해 현장으로 가던 그의 차량주위에 포탄이 떨어져 위기를 맞기도 했다. 또 망명했던 전대통령 감사후르디아가 그루지야 서부지역에서 반란을 일으켜 수도 트빌리시까지 공격을 해온 적도 있다.
94년 3월에는 내무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1백여명의 무장경찰이 의회에 난입했으나 경호원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현장에서 빠져 나오는데 성공했다.
그는 또 그루지야가 독립국가연합(CIS)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하는 한 의원으로부터 주먹세례를 당한 일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위험에도 불구, 그는 현 정국의 혼란을 막고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92년 폐지된 강력한 대통령제 부활과 연방제 실시밖에 다른 길이 없다고 보고 의회내의 각 정파들을 설득해 지난주 이같은 내용의 신헌법을 통과시켰다.
이번 사건은 바로 이 신헌법 서명식에 가려던 그를 노린 것이 분명한 만큼 범인은 신헌법에 불만을 가진 세력일 것으로 보인다.
1928년 그루지야 남부 마마티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나 청년공산당 지도자를 거쳐 그루지야 국가보안위원회(KGB) 의장을 지냈고 72년부터 그루지야 공산당 제1서기를 하다 85년 고르바초프의 발탁으로 외무장관이 된 그는 서방과의 외교에서 탁월한 협상능력을 발휘, 「은여우」라는 별명을 들었다.
90년 한소 수교때 소련대표로 서명을 하기도 했던 그는 그러나 아무리 노련하고 꾀가 많아도 정국상황이 너무도 복잡한 고향땅을 안정시키기에는 힘겨운 모습이다.<모스크바=이장훈 특파원>모스크바=이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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