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아랍의 새 강자로 발돋움(통일3국을 가다:15)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예멘/아랍의 새 강자로 발돋움(통일3국을 가다:15)

입력
1995.05.09 00:00
0 0

◎인구·민주체제 발판 국제적 위상 갈수록 증대/“잠재력 크다” 사우디·쿠웨이트등 주변국 견제90년5월22일 예멘아랍공화국(북예멘)과 예멘인민공화국(남예멘)이 예멘공화국으로 통합을 선포한 1주일 뒤 바그다드에서 열린 아랍정상회담에서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예멘통일은 모든 예멘인의 양심에 따른 결정이다. 더이상의 분단은 예멘인의 고통과 변화하는 세계정세에서 예멘의 고립상황을 심화시킬뿐이라는 생각에서 통일을 앞당기게 됐다』이로부터 정확히 5년이 지난 지금, 통일예멘이 차지하는 국제적위상은 어떤가. 예멘의 집권당인 국민의회당의 압둘하디 알 하마다니 외교분과위부위원장은『예멘은 통일의 열매를 따기 보다는 내란의 상처를 극복하기 바쁘다. 우선 주변국과의 우호선린관계를 강화해 나가면서 국제적 역량을 축적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내세울 만한 처지가 못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한 것이다.

예멘통일의 국내적 배경은 남북간 긍정적 요소의 교환 필요성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북예멘은 시장경제와 민주정치체계, 사회주의 틀을 유지했으나 1백28년간 영국의 오랜 식민통치로 잘 정비된 남예멘의 근대적 행정제도등을 서로 공유하려 했다. 여기에 전략적 요충지인 아덴항과 국경지대 유전의 공동개발 필요성이 무엇보다 컸다.

예멘이 90년 통일 이후 권력투쟁의 소용돌이를 겪다 결국 무력으로 재통일된 지 1년도 채 안된 시점에서 아직까지는 이같은 두 체제간 우성적 요인의 접붙이기가 새로운 예멘으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오히려 부작용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경제는 날로 악화돼 합의통일 직후 달러당 40예멘리알 하던 화폐가치가 무력통일 직후에는 1백리알로, 지금은 1백60리알까지 떨어져 통일예멘의 어려움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통일예멘은 아랍지역의 새로운 강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지난해말 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열린 아랍정상회담에서 통일예멘의 지도자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다른 아랍강국의 지도자에 떨어지지 않는 주목을 받았다. 살레대통령은 아랍정상회의 이후 프랑스등 유럽국과 중동국가를 순방, 무력으로 통일을 완성한 강자로서 예멘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협력을 다짐받았다.

예멘의 통일과정에서 드러난 걸프만협력기구(GCC)의 미온적 태도, 또는 방해는 예멘이 지역의 강자로서 부상할 가능성에 대한 주변국의 경계심때문이었다. 특히 예멘과 긴 국경을 접하고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쿠웨이트는 예멘의 분단고착을 획책하고 내란중에는 남예멘을 군사적으로 지원했다. 예멘이 군사적 강국이 되는 것에 대한 우려와 함께 아라비아 반도에서 유일하게 복수정당제도를 운영하며 의회를 갖고 있는 북예멘의 민주주의 체제가 왕정을 펴고 있는 다른 아랍국에 정치불안의 위협요소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예멘은 통일 직후 발발한 걸프전에 대해 아랍문제는 아랍이 해결해야한다는 원칙하에 미국주도의 서방의 군사적개입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함으로써 외교, 경제적 후유증을 지금까지 겪고 있다. 사우디는 예멘의 이라크지지에 대한 보복으로 예멘근로자 1백만명을 추방, 예멘은 외화획득에 가장 큰 몫을 차지하던 매년 20억달러에 달하던 송금수입이 끊어졌다.

작년말과 지난 1월 사우디와 예멘을 전쟁위기까지 몰고 간 국경분쟁은 기본적으로 사우디의 대예멘 영향력 유지와 통일예멘의 자존심 과시가 맞붙은 사건이다. 사우디는 과거 구 북예멘의 반정부 부족을 지원하는 한편 예멘에 대한 경제원조를 빌미로 예멘의 종주국적인 위치를 누려왔다.

아직까지는 아라비아 반도의 최빈국에 통일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예멘이 국제사회에서 주목받는 나라가 되기에는 요원해 보인다. 그러나 아라비아반도의 최대인구(1천5백만명), 민주적 정치체제에 석유와 천연가스의 생산을 개시한 통일예멘의 잠재력은 평가해야할 것이다.<사나=한기봉 특파원>

◎통일후 달라진 남예멘 거리풍경/이슬람문화가 되살아난다/차도르복장·전통단검 착용 물결/회교원리주의 목소리도 높아져

구 남예멘의 수도 아덴시내에서 통일후 가장 달라진 모습이 있다면 자유분방했던 성인여자의 복장이 얼굴까지 가리는 전통적인 검은 회교복장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성인남자들은 허리에 L자형 단검인 「잔비아」를 차고 다니기 시작했다. 사회주의 시절에는 무기로 쓰일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됐던 전통복장이다. 시내에 많던 맥주집은 완전히 사라졌다. 아덴정유소 근처에 있던 맥주공장은 철폐돼 건물만 흉물스럽게 남아있다.

사나와 아덴시민의 모습이 다시 똑같아진 것이다. 구 남북예멘은 정치체제는 달랐지만 종교적으로는 다같은 회교국가였다. 『이슬람은 한 형제』라는 종교적 믿음은 국민의 통일열망에 가장 큰 요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 남예멘의 회교전통은 6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 친소련 사회주의체제가 들어선 이후 정치적 이유로 많이 희석되거나 왜곡돼왔다. 따라서 통일 이후 남예멘사회의 재편과 회교식 개혁은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남예멘사회는 정통회교사회로의 개편에 별 저항감을 느끼지 않고 있어 사회문화적 회교전통은 급속히 부활되고 있다.

통일예멘은 우선 지난해 9월 헌법개정시 「샤리아」(회교율법)를『모든 법률의 근원』으로 규정, 회교이념에 의한 통치를 강화했다. 예전에는 모든 법률의 「주된 근원」으로 명기돼 있었다. 이는 통일과도정부 시절인 93년 총선에서 제2당으로 떠오른 보수이슬라당의 주장을 반영한 것으로 샤리아를 헌법의 유일한 근원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이다.

한편 회교원리에 보다 충실한 보수이슬라당의 급부상은 회교근본주의의 출현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국내외에 부각시켰다. 작년 9월 이슬람과격파로 보이는 무장집단이 이슬람전통에 위배되는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아덴의 모스크(회교사원) 2곳을 중화기로 폭파한 사건이나 북예멘의 여기자가 노출된 의상을 입었다는 이유로 아덴에서 피살된 사건은 이같은 우려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슬라당이 과격 회교정당이라기 보다는 보수적 정당이고 통일예멘이 기본적으로 실용주의적 노선을 걷고 있다는 점에서 회교원리주의의 출현에 대한 우려는 아직은 심각하지 않은 편이다.<아덴=한기봉 특파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엣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