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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의 「황소군기」/손태규 통일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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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의 「황소군기」/손태규 통일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4.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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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소같은 군인들 입니다』 29일 전군에서 가장 험한 지역이라는 중부전선 ○○사단. 겨우 9백여 떨어져 북한군 초소와 대치하고 있는 최일선 GP(감시초소)와 GOP(일반전초)의 장교·하사관·사병들을 이종규 사단장은 『황소』라 불렀다. 겹겹이 산으로만 둘러싸인 오지에서 눈만 뜨면 오로지 적정을 감시하는 이들에게 장교탈영이나 소대장 길들이기와 같은 상황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는 뜻이다.

 마치 중세의 성과 흡사한 GP. 북한군들과 수화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비무장지대의 긴장감이 시멘트 벙커를 더욱 차갑게 만드는 곳. 밤이면 체감온도가 영하20도 아래로 떨어져 고립감이 더욱 깊어지는 극한지대다. 소대장등 20여명의 부대원들은 최악의 조건을 말없이 감내하며 조국의 최일선 눈과 귀를 자부하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담보하며 생활하는 이들에게 믿음은 절대 신앙처럼 보였다. 하봉진(하봉진)연대장은 『끈끈한 형제애로 어려움을 이긴다』고 했다. 한 사병은 노파심에서 물어보는 군기문란 문제에 대해 『그런 것 없습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개인의 욕망을 모두 묻어 버리지 않으면 참으로 군대생활을 지탱하기 어려운 곳이 사단의 관할지역이었다. 아직 관공서, 병원, 시장, 서점, 목욕탕, 미장원, 은행이 없다. 한때는 오지의 외로움과 무서움을 견디다 못한 젊은 군인 아내들이 정신이상 끝에 떠나던 곳이었다. 그래도 하사관들은 이곳에서만 10년, 20년 세월을 바친다. 장교들은 격오지 근무를 영광으로 안다. 삭막한 환경에서 보낼 2년여 시간이 한심해 울면서 온다는 사병들도 갈때는 정을 떼지 못해 다시 운다고 한다. 94년은 군과 군인에게 악몽같은 한해였다. 60여만명의 건장한 남자가 몸과 몸으로 부딪치는 곳에 편한 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전선의 황소같은 군인들은 묵묵히 조국을 지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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