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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시집 「마음의 수수밭」/김선학 문학평론가·동국대교수(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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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시집 「마음의 수수밭」/김선학 문학평론가·동국대교수(시평)

입력
1994.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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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끝에 도달한 하나의 경지 편안한 마음으로 읽으면 천양희의 시는 답답하다. 답답한 마음일 때 읽는 천양희의 시는 절망의 동반자가 세계 속에 있다는 유대감을 갖게 해 준다. 천양희의 시는 답답하고 암울하고 절망적인 색깔을 띠고 있다. 시인은 세계 속에서 절망하고 절망하면서 삶의 바다를 헤쳐 나갈 수밖에 없는 고달픔을 언어로 풀어놓는다. 사는 일이 생각보다 답답하고 마음대로 해결할 수 없는 것임을 천양희의 시는 노골적으로 진술하려 한다.

 「마음의 수수밭」(창작과 비평사 간)은 시인 천양희의 시 세계가 절망의 한 경지에 도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시의 행렬이다. 표제의 시를 조심스럽게 읽으면 시인이 왜 「수수밭」을 자신의 「마음」으로 설정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설정이라기 보다 시인은 「마음이 수수밭을 지난다」라고 시의 처음에서 말하고 있다. 시집의 시 속에서 시인은 언제나 떠돌면서 절망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그 방황을 「수수밭」이라는 대상을 통해 토로하고 싶은 것이다.

 화려하지 않고, 아름답지도 않은 외양을 가진 것이 수수다. 그것이 모여 하늘을 향해 고개 숙이고 있는 것이 수수밭이다. 수숫대 사이로 파랗게 트여가는 하늘, 수숫대 사이로 떠오르는 보름달은 절절 끓던 여름이 가고 소슬한 바람을 몰고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하늘은 어쩌지 못하는 운명 혹은 섭리같은 것, 가을은 결실을 말하는 계절이 아닌가. 시인은 수수밭이라는 언표를 통해 운명과 섭리에 고개 숙이고, 지명의 연륜에 서서 절망의 결실을 언어로 담아내려 한다. 그래서 시인은 「저녁만큼 저문것이 여기 또 있다」고 「머위잎 몇장 더 얹어 뒤란으로」가서 말하게 된다. 그리고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에 오르니, 천불산이  몸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 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고 말한다.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수가 없다」는 것은 섭리와 운명에 고개 숙여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닌가. 「수수밭을 지난다」에서 「수수밭이 환해진다」로 끝나는 것은 방황과 절망을 넘어 이제 한 경지를 결실하는 시인의 모습으로 이해할 수는 없겠는가.

 시는 가장 주관적인 장르이고 시인은 구제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투로 사르트르는 시인을 비아냥댔다. 시인이 세계를 너무 주관적으로 파악하려 하는 점이 있음은 사실이다. 그래서 자신의 울타리 너머에 있는 공동체 삶의 모습에 태무심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절망을 자신의 울타리 속에 가두고 「다시는 아무곳에나 내 이름을 내려놓지 않으리라」면서 빗장을 걸어 잠근 세계가 시집 「마음의 수수밭」이 보여주는 시 세계다. 시인의 절망을 보편적인 인간의 운명적 절망으로 시에서 변용할 수는 없을까를 생각해 본다. 너무 노골적인 운명적 절망에 대한 천양희의 진술이 가진 시적 한계를 여기서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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