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민주주의표방 중산층 “흡인”/참신성앞세워 세대교체도 노려 영국 노동당이 전후세대의 젊은 지도자를 내세워 기나긴 야당생활 청산에 나섰다. 21일의 임시전당대회에서 새 당수로 뽑힌 토니 블레어는 올해 불과 41세. 젊음과 참신함을 무기로 중산층의 지지를 얻고 있는 블레어는 15년째 정권에서 밀려나 있는 노동당을 권력에 복귀시킬 유망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난 5월 급사한 존 스미스의 뒤를 잇게 된 블레어는 1953년생으로 변호사 생활을 하다 30세 때인 83년 의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불과 11년만에 당권을 거머쥔 그는 역대 최연소 당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2년뒤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최연소 총리기록을 추가하게 된다.
블레어의 등장은 영국의 정치기상도를 크게 바꿔 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블레어가 이끌 노동당은 10여년간 계속돼온 당 근대화 작업을 마무리짓고 수권정당으로 변모할 것이다. 그는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닐 키녹과 존 스미스 밑에서 노동당의 궤도수정 작업을 추진해왔다. 노동당이 80년대 이래 추구해온 국유화등 전통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수정하고 중산층의 표를 끌어들일 수 있는 정당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블레어는 국유화 및 노조와의 밀접한 관계등 전통적인 노선에 이의를 제기해 왔다. 또 사회의 책임 뿐 아니라 개인의 역할을 중시하는 입장이어서 사회주의보다는 사회민주주의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당내 좌파와 노조간부들은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대신 보수당의 아성인 영국 남부의 중산층으로부터는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정권을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이들이 블레어의 노동당 쪽으로 돌아서고 있기 때문에 2년 뒤 총선에서 노동당이 정권교체를 이룰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당내 우파로 분류되는 블레어의 노선은 보수당과 자유민주당등 주요 정당에도 노선 수정을 강요하고 있다. 극우 보수성향의 대처와는 달리 존 메이저는 보수당 안에서는 좌파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이 때문에 새로운 모습으로 대결할 노동당과 보수당은 정책 면에서 뚜렷한 차이를 발견하기 힘들게 됐다. 정책에서 뚜렷한 구분이 어려워져 중간성향의 유권자들은 장기집권에 실정과 내분으로 인기가 떨어진 보수당보다는 참신한 블레어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보수당은 노동당에 비해 지지율이 20∼30%나 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블레어가 당을 이끌 경우 지지율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게 여론조사들의 전망이다. 두 당의 중간 위치인 자민당은 노동당의 우경화로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중산층에 어필하는 사회주의 정당」으로 변신하고 있는 노동당에 대응하기 위해 보수 자민 두 당 역시 노선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한 입장이다.
블레어의 등장은 또한 영국정계의 세대교체를 촉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유부단한 지도력으로 곤경에 처해 있는 메이저는 20일 당의장과 일부 장관을 경질하고 집권 후반기의 전열 정비에 나섰으나 이미지를 쇄신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보수당 내에서 가장 유력한 후계자중 한 사람은 새로 노동장관을 맡은 마이클 포틸로. 올해 40세인 그는 대처노선의 추종자로 우파의 대표적 주자다. 아직 「어리다」는 게 유일한 핸디캡이었으나 비슷한 나이의 블레어가 노동당을 장악함에 따라 어부지리를 얻게 되었다. 더욱이 포틸로의 극우노선은 블레어의 노동당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반사이익도 얻을 수 있다. 차차기를 노리던 포틸로는 상황이 변화하면 대망을 앞당길 수도 있게 되었다.
그동안 꾸준히 나돌았던 것처럼 메이저가 올해나 내년 중에 축출될 가능성은 상존한다. 설사 다음 총선까지 이끌더라도 지금의 분위기대로라면 패배가 확실시된다. 40대 초반의 정치엘리트들 간의 신세대 대결이 빠르면 올해 말, 늦어도 2년 뒤부터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런던=원인성특파원>런던=원인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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