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 서초동 법원가에 보기드문 풍경이 벌어졌다. 국민학교 어린이 20여명이 법정에 출석했다. 사회생활 공부를 위한 견학이 아니라 재판의 당사자인 원고자격으로 출정한 것이다. 재판장이 『공부를 하지 않고 법정에 나오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고 훈계, 다음 재판부터는 부모들만 나왔다.
○법정의 국교생들
지난 2월말 문을 닫은 경기도 가평군의 산골마을 두밀분교 폐교조치를 취소해달라는 이 소송의 원고는 이 학교 재학생 24명이다. 변호사를 법정대리인으로 했으므로 미성년자들도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세상물정을 모르는 어린이들이 법률다툼의 당사자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람직한 것이냐 아니냐 하는 데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소송당사자 자격시비가 아니라 주민들과 학생들이 그토록 반대하는 폐교조치가 옳은 것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두밀리 주민들은 자기마을 학교와 학생수가 비슷한 스위스의 산골학교가 얼마나 훌륭한 교육성과를 올리고 있는지를 소개한 TV프로그램 테이프를 증거자료로 제시해가며 폐교조치의 부당성을 호소하고 있다. 학생 수가 24명밖에 안돼 복식수업이 불가피하고, 그런 학교를 유지시키는 것이 예산낭비라는 교육당국의 폐교이유가 부당함을 증명하려는 노력이다. 주민들은 『30여년전 학교터를 기증하고 등짐을 져 날라가며 건축공사를 도왔고, 쌈짓돈을 털어 책상 걸상을 마련해 이룩한 두밀분교는 마을사람 모두의 공공시설이므로 강제폐교는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학생들도 멀게는 7나 떨어진 본교로 통학하기가 불편하고, 작지만 가족적인 분위기의 분교가 더 좋다고 본교전학을 마다하고 있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가르치는 마을회관 임시교실수업을 택한 것도 그래서다.
가평군교육청측은 폐교이유를 예산절감과 3복식수업 때문이라고 말한다. 교사 2명의 인건비와 전기값 수도값등 학교운영비가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그 정도의 예산을 아끼겠다고 온 마을이 반대하는 폐교를 강행한 것은 잘한 일 같지 않다.
○납득안가는 이유
그 돈을 아껴 꼭 필요한 곳에 학교를 세우는데 쓰겠다면 그런대로 납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10여년전부터 시골 작은 학교 통폐합에 열심이다. 교육부 집계에 의하면 82년 이후 없애버린 국민학교는 본교 2백24개, 분교 9백9개등 1천1백33개교다. 심지어는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초·중학교」란 이름으로 통합해 교장을 한 사람만 둔 기형적인 학교도 생겨났다.
시골학교 통폐합시책 시행당시 교육부가 정한 기준은 「학생수 1백80명, 학급수 6학급 이하」였다. 전국 6천57개 국민학교의 3분의 1이 훨씬 넘는 2천4백여개 학교가 대상이다. 『기준에 든다고 다 없애는 것이 아니라 주민의견등을 고려해 해당교육청이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있다』고 교육부는 말한다.
주민 모두가 폐교를 원한다면 몰라도 글쎄, 우리마을 학교를 없애주시오 할 사람이 있을지 의심스럽다.
○이상적인 학생수
더욱 위험한 발상은 학생수 「1백80명 이하」라는 폐교기준이다. 1백80명이면 학년당 30명꼴이다. 학급인원 30명이라면 과밀학급에 진저리쳐온 우리 교육계가 지향해온 이상적인 수가 아닌가. 날로 피폐해가는 농어촌에 교육만은 가장 이상적이라는 보너스를 줄 수는 없을까.
국민의 세금을 재원으로 한 초등교육은 의무교육이다. 24명의 어린이가 있는 마을이면 찾아가 학교를 세워주어야 할 의무가 국가에 있다.
「돌아오는 농어촌」이란 정부의 정책목표 실현을 위해서라도 시골학교를 없애는 단세포적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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