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한바탕 활극을 벌여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국회는 7일 여야합의로 새해예산안·추곡수매동의안·안기부법개정안등 25개 법안을 의결했다. 뭇매를 맞아야 정신이 나는 모양이라고 계속 눈흘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뒤늦게라도 국회가 「협상과 합의」라는 민주주의의 기본틀로 복귀한것은 다행이다. 이번 성과는 전적으로 민주당이 싸워서 얻은것이다. 우리는 더이상 량비론에 머물지 말고, 민주당의 손을 높이 들어줘야 한다. 지난 2일밤 민주당의원들이 주먹질 발길질을 하며 민자당의 날치기 시도를 막지 않았다면, 추곡수매안은 여당안대로 넘어가고, 안기부법개정도 물건너갔을것이다. 국회의사당에서 그같은 활극을 벌이는것은 물론 추태지만, 여당이 무리하게 날치기를 시도한다면 야당은 추태를 무릅쓰고라도 막아야 한다.
이번에 통과된 안기부법 개정안과 추곡수매 동의안을 보면 민자당이 상당부분을 양보하고 있다. 이 정도로 야당의 요구를 수용할 생각이었다면, 날치기를 시도할게 아니라 협상으로 합의를 끌어내려고 노력했어야 한다. 헌법에 명시된 예산안 의결시한을 넘기는것은 위법이므로 법을 지켜야 한다는것이 민자당의 날치기 명분이었는데, 지금까지 국회가 지켜본 적이 별로 없는 예산안 의결시한이 법안자체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것은 억지다.
안기부법에서 민자당은 고무찬양죄와 군사기밀 누설죄등에 대한 안기부의 수사권 폐지에 반대하다가 양보했고, 직권남용죄·보안감사권·예산심의등 대부분의 항목에서도 후퇴했다. 추곡수매량 협상에서는 『9백60만섬에서 한톨도 더 늘릴 수 없다』던 고집을 꺾고, 1천만섬 수매에 합의했다. 2일에서 7일까지 닷새동안 무엇이 여당을 변화시켰나를 생각해보면 더욱 씁쓸해진다. 날치기소동과 쌀개방으로 국민의 공격이 정부여당으로 쏠리자 민자당은 야당과 협상을 시작했고 양보도 했다.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다. 그러나 여건이 좋다고 판단되면 한없이 강해지고, 여건이 불리해지면 재빨리 후퇴하는 여당은 매우 위험한 존재다. 강해질때나 약해질때나 국민이 동의할 수 있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새 안기부법은 문민시대를 외쳐온 집권당이 앞장서서 처리해야할 대표적인 개혁입법이었다. 지금까지 야당의 개정안에 반대해온것은 과거를 너무 쉽게 잊고, 문민시대의 출범자체를 스스로 부인하는 행위였다는 점을 반성해야 한다.
이번 국회는 몇가지 의미있는 진전을 보였다. 이만섭국회의장이 날치기 처리를 거부한것도 그중의 하나다. 당원의 처신으로는 문제가 있고, 의사봉을 부의장에게 넘긴채 날치기를 막기위한 아무런 노력도 하지않았다는 공격이 있으나, 우선 옳지않은 당명에 불복종했다는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당의 날치기지시에 앞장섰다가 상처만 입은 다른 의원들에게도 교훈이 될것이다.
민주당은 잘싸웠다. 그러나 쌀개방 저지 투쟁에서는 국민을 안심시키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민투표」를 하자는 주장같은것은 무리다. 쌀시장을 개방하여 농촌을 울릴것인지, 쌀시장을 고수하여 국제시장에서 외톨이가 될것인지를 국민에게 선택하라는 유치한 주장은 거둬들여야 한다. 민주당은 이제부터 잘해야 한다. 야당이 살 길은 하나뿐,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국민을 위한 길을 가는것이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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