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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련한 일 외교관의 당황/원인성 런던특파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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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련한 일 외교관의 당황/원인성 런던특파원(기자의 눈)

입력
1993.07.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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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의 대명사가 된 영국의 BBC 텔레비전은 지난 7일 한국에 관한 특집뉴스를 내보냈다. BBC의 대표적인 심야뉴스 프로인 「뉴스나잇」은 전체 45분의 방송시간중 3분의 1이 넘는 17분여에 걸쳐 한국을 소개했다.하지만 그중에서 한국인 시청자의 시선을 끄는 대목이 하나 있었다. 한일관계에 관한 부분이었다. BBC는 독립기념관을 찾는 국민생활의 모습을 비추면서 일본이 한반도에서 저지른 만행과 요즘 평범한 한국인들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대일관을 소개했다.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김영삼대통령은 정신대 문제를 정면으로 언급했다. 김 대통령은 『한국정부는 재정적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의 진실을 말하라는 것』이라며 『일본이 성실하게 답할 때까지 주의깊게 지켜보겠다』고 단호한 입장을 재천명했다.

곧 이어 고토 도시오(후등리웅) 주한 일본 대사의 인터뷰 장면이 방영됐다.

기자­요즘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어떠한가.

대사­(점잖은 표정으로)아주 좋다. 한국과의 우호관계는 일본 외교의 가장 중요한 부분중의 하나이다. 또 양국은 전통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기자­그렇다면 왜 정신대 문제에 대한 분명한 사과를 거부하는가.

대사­(말을 더듬으며)정신대 얘기를 하는데… 우리는 지금 사실 확인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50년전의 일이라 정확한 사실과 자료를 수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측도 지난해부터 일본이 성의를 보이고 있다는 점은 인정할 것이다.

기자­사실이 확인되면 사과를 할 것인가.

대사­(갑자기 당황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향해 손을 내저으며)잠깐,그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고 싶다. 그건 매우 미묘한 문제이다. 카메라 취재를 중단해달라(인터뷰 중단).

일본 대사와의 인터뷰는 불과 1분10초 정도에 불과했다. 「대국」의 대사가 당황해서 인터뷰를 끊어버린 흔치않은 사건이 일본에 우호적인 영국인들에게 어떻게 비쳐졌을지,그들이 두나라 관계를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 눈으로 볼때 인상적인 것은 30년만에 처음인 한국의 민간인 대통령이 그전의 군인대통령들과 달리 대일관계를 당당하게 언급했다는 사실과 노련한 일본 외교관 조차 당황해할 수 밖에 없었던 일본의 이중성을 실감있게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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