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90여명 예배중 삽시간 “연옥”/원주 「여호와의 증인」 참극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90여명 예배중 삽시간 “연옥”/원주 「여호와의 증인」 참극

입력
1992.10.05 00:00
0 0

◎양탄자 바닥 휘발유 뿌려/두번 위협에도 제지안해/부부·남매·모녀 함께 사망도【원주=오운영·이태희·현상화기자】 종교적 갈등이 어처구니없는 참극을 빚었다. 갑자기 연옥으로 변한 교회안에서 불길과 연기에 휩싸인 신도들은 미처 대피할 사이도 없이 숨져갔다.

중화상을 입은 신도중에는 수혈을 금하고 있는 독특한 교리에 따라 병원에서 수혈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어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방화◁

원씨는 4일낮 12시께 교회문제로 부인 신성숙씨와 심하게 다투다 신씨가 『하나님이 우선이고 가정과 가장은 두번째이니 교회에 가야겠다』며 집을 나가자 홧김에 소주 1병반을 마신뒤 아내의 교회가방에서 「우산동에 있는 교회에서 하오 2시께 모임이 있다」는 쪽지를 발견,교회로 쫓아갔다.

원씨는 하오 1시께 집에 있던 20ℓ 석유통을 들고 집에서 1㎞정도 떨어진 H주유소에서 휘발유 10ℓ를 구입,3백m 가량 떨어진 교회로 갔다.

원씨는 교회 1층 출입문을 발로차 출입문 유리창을 깨뜨린뒤 2층 예배당 출입문을 열고 예배중인 신도들에게 『내 집사람을 달라』고 2∼3차례 소리쳤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한 여신도가 『정수엄마는 여기 오지 않았다』고 대답하자 원씨는 『이 곳에 있을 것』이라며 『빨리 내처를 내놓지 않으면 기름을 붓겠다』며 석유통 뚜껑을 열고 출입문 부근 바닥에 휘발유를 붓었다.

원씨가 다시 『처를 내놓으라』고 소리쳤으나 신도들이 대답을 하지않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대피 및 진화◁

불은 순식간에 카펫과 벽에 부착해놓은 스티로폴에 옮겨붙으며 내부전체로 번졌다.

불이나자 안에 있던 90여명의 신도중 일부는 평소 사용하지 않던 다른 출입문을 열고 대피했고 10여명은 창문을 깨고 3m 아래 길바닥으로 뛰어내려 다치기도 했다.

예배실 안 제단쪽에 있던 13명은 불길에 온몸이 불탄 시체로 발견됐다.

불이나자 소방차 7대와 소방관 30여명이 동원돼 진화작업을 벌였으나 불길이 거세 건물내부 27평을 모두 태웠다.

▷사망자◁

이날 숨진 신도들 가운데는 부부와 남매 및 3모녀가 포함돼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날 순회설교차 이 교회에와 설교를 했던 정태용장로(58)와 부인 이병오씨(62)가 함께 변을 당했으며 이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김영상장로(45)의 딸 은주양(20·원주전문대 2)과 아들 민수군(15)도 함께 숨졌다.

또 강대앞에서 설교를 듣던 김광연씨(29·여)와 딸 여서인(6),혜인양(4) 자매 등 3모녀도 참변을 당했다.

▷여호와의 증인◁

1872년 미국인 찰스 러셀이 기독교의 한 종파로서 창시한 여호와의 증인은 1912년 미국 선교사 홀리스터 부부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파돼 현재 서울 중구 신당동의 본부를 비롯,전국 1천1백여개 왕국회관(교회)에 7만여명의 신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삼위일체설·예수의 육적부활·인간의 영혼불멸성 등을 부정하고 지상천국·시한부 심판론 등 현세를 중시하고 있어 기독교단에서는 이단시해왔다.

또 여호와의 증인은 독특한 교리로 인해 징집 및 예비군훈련 기피,국기배례 및 집총거부,수혈·헌열거부 등으로 자주 사회문제가 되어왔다.

지난 77년에는 신도 박월선씨(당시 42·여)가 급성간질환으로 중태에 빠진 딸 김경숙양(당시 11)의 수혈을 거부,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화재가 난 여호와 증인 왕국회관은 장로 김영상씨(45)가 90년 1월 학성동 교회를 정리한후 이 건물 2층을 1천만원에 구입,신도들의 연락장소 및 예배장소로 사용해왔으며 신도수는 5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예배는 주일 정례예배였으나 제천 영월 원주지역 순회감독자인 정태용장로(58·사망)가 특별연사로 나선다는 소식에 신도들이 가족들까지 데리고와 평소보다 많은 90여명이 참석했다.

신도들은 다같은 형제이므로 스승이나 어버이를 뜻하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다며 목사라는 용어대신 장로라는 용어를 사용할 정도로 강한 내부 결속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 명단◁

▲정태용(58·원주시 우산동 우산APT 9동 105호) ▲이병오(62·여· 〃 ) ▲김은주(20·여·원주전문대 2년·원주시 평원동 250의 17) ▲김민수(15· 〃 ) ▲김광연(29·여·원주시 단계동 524) ▲여서인(6·여· 〃 ) ▲여혜인(4·여· 〃 ) ▲노성진(14·학성중 2년·원주시 우산동 삼호APT 1동 404호) ▲권순국(15·학성중 2년·원주시 단계동 8의 2) ▲장동규(17·원주시 단계동 135의 8) ▲장미애(22·여·서울 성동구 중곡3동) ▲최진희(22·여·원주시 단계동) ▲김영옥(20·여·원주시 단계동 176의 3) ▲김형태(51·원주시 학성동 일산아파트 5동 211호)

◎수혈거부 치료곤란

▷수혈거부◁

골절과 중화상을 입고 원주기독병원 원주의료원 및 연세병원에 옳겨진 신도 24명 가운데 권문기씨(24) 등 일부는 여호와의 증인 교리에 따라 수혈을 거부하고 있어 치료에 애를 먹고 있다.

2도 화상을 입은 권씨는 수혈을 받아야 될 형편이지만 본인이 여호와의 증인들이 평소 가지고 다니는 「수혈거부각서」를 내보이며 수혈을 거부하는데다 가족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원씨주변◁

원씨는 방송통신고를 졸업한뒤 지적기사 9급 자격증을 획득,지난 77년 9월 대한지적공사에 입사,강원도지역에 근무하다 지난해 5월부터 원주출장소에서 일해왔다.

원씨는 82년 10월 부인 신씨와 결혼,국민학교 4학년과 2학년인 두딸을 두고 있으며 어머니(67)와 함께 살아왔다.

그러나 원씨는 부인 신씨가 지난 3월부터 여호와의 증인 교회에 주3∼4회 정도 나가며 가정일을 소홀히하자 다투어왔다.

원씨의 직장 상사인 조모씨(40)에 의하면 『원씨는 아내가 교회에 나간뒤부터 가정을 돌보지 않고 불교신자인 어머니와 자주 불화를 일으킨다며 고민해왔다』고 말했다.

◎“가정 돌보지 않아 홧김에 범행/술에 취해… 이렇게 될줄 몰라”/범인 일문일답

­범행동기는.

▲아내가 평소 극구 만류한 여호와의 증인 교회에 다니면서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가정불화가 잦았으며 오늘도 교회에 나가지 말라고 했는데도 교회에 나가 홧김에 소주 1병반을 혼자 마신후 인근 주유소에서 휘발유 1만원 어치를 사가지고 교회를 찾아가 아내를 찾았으나 숨기고 안내주는 것 같아 교회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부인이 교회에 다닌 것은 언제부터인가.

▲6개월전 부터다. 나는 불교신도인데 아내가 하필이면 기성교단에서 이단시하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 교회를 다녀 평소 이를 만류해왔는데도 듣지 않았다.

­가족사항은.

▲아내와 10년전에 결혼해 국민학교 2학년 4학년에 다니고 있는 두 딸이 있다.

­지금 심정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극도로 화가 나 순간적으로 불을 질렀는데 이같이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할 줄은 몰랐다. 사상자에 대해 죄책감만 앞서며 할 말이 없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