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산기업 불하 “맨주먹 출발” 행운/선경 최종건·한국화약 김종희등/쌍용·두산등도 도약발판 계기로/연고권 바탕 2천7백개 불하… 현존기업 40∼50개 불과행운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행운을 제대로 잡기도 어렵다. 그러나 한번 잡은 행운은 그 사람을 전혀 다른 곳으로 몰아간다.
해방이 되자 세상은 나라를 되찾은 기쁨과 45년 동안 유지됐던 체제가 무너지는 대혼란이 왔다. 특히 일본인들이 버리고간 재산은 먼저 차지하는게 임자였다. 이른바 적산으로 불리던 토지는 말뚝만 박으면 임자요 집은 문패만 바꿔달면 주인이었다.
해방이전 일제하의 국내 주요 산업시설은 거의가 일본인 소유였다. 일본의 자본은 30년대말 일본내에서 산업통제법이 발효되면서 통제가 덜한 한국으로 대거 몰려왔고,태평양전쟁 말기에는 폭격을 피해 일본의 많은 산업시설들이 한국으로 옮겨왔다. 해방당시 국내 주요 산업시설의 80%가 일본인 소유였고 기간산업으로 지목되는 대기업은 거의 적산기업이었다.
덩치 큰 적산기업에 대해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즈음 미 군정청은 일본인 재산이양에 관한 법령을 발표하고,재산 관리인을 둔 뒤 불하하기 시작했다. 당시 적산기업을 잡는 것은 조상으로부터 수많은 재산을 물려받는 것보다 나았고 노다지 금맥을 잡은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너도 나도 달려들어 한줄 잡으려는 정치곡예가 시작되고 이듬에 브로커들이 날뛰었다.
그러나 미 군정의 원칙상 해당 적산기업에 연고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무래도 유리한 입장이었다. 오늘의 재벌중 많은 숫자는 바로 이 적산기업으로부터 출발한다.
선경그룹의 창업주인 최종건은 수원에 있던 선경직물의 기계주임을 맡고 있던 중 해방을 맞자 선경직물 치안대의 대장의 되어 공장을 통째로 불하받아 선경그룹의 틀을 만들었고 대한중기의 김연규,동일방적의 서정익,한국화약의 김종희 등은 일본인이 운영하던 기업에 직·간접으로 연관을 맺은 것을 인연으로 재벌로 부상하는 행운을 잡았다.
육척 거구인 최종건씨는 입사 3일만에 일본일을 때려 화제에 올랐다. 1944년 4월의 일이다. 일본인에게 눌려만 지내던 한국인 근로자들에게는 구세주가 들어온 것이다. 그는 한국인 근로자들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고 해방이 되자 가동이 중단된 선경직물을 지키기 위해 조직한 선경치안대의 대장을 맡았다. 그는 부장의 직책으로 조선인 소액주주들과 협의,선경직물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운영권자였고 많은 돈을 벌었다.
김종희씨는 당시 국내의 화약을 독점하던 조선화약 공판에 근무하던 유일한 한국인으로 해방후 이 회사의 화약공급업체인 조선유지의 인천공장 관리인이 됐다. 그는 일본인이 남기고 간 재고를 처분해 밑천을 마련하고 그 자금을 다시 공장에 투입,재산을 불려 나갔다.
이미 기업을 경영하고 있던 유명무명의 기업인들도 적산불하 경쟁대열에 뛰어들었다.
구한말에 창업한 박승직 상점의 후계자인 박두병은 소화기린맥주의 관리인이돼 오늘날 동양맥주로 키웠다. 그의 부친이 영등포 소화기린맥주의 주식 2백주를 갖고 있던 것을 인연으로 이 회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대구에서 삼공유지를 경영하던 김성곤도 영등포에 있는 동경방직 소유의 방적기 2천추와 안양의 조선직물 건물을 불하받아 쌍용그룹의 모태인 금성방직을 설립했고 일본인 소유의 영강제과에 근무하던 민후식 신덕발 박병규 등은 이 공장을 불하받아 오늘날 해태그룹으로 키웠다. 이밖에 서정익은 동양방직,백락승은 고려방직,백화양조의 강정준은 조선주조의 군산공장,성경동은 군시공업 등을 불하받아 재벌로의 기반을 다졌다.
이러한 형식으로 불하된 적산은 당시 2천7백개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이를 발전시켰거나 유지하고 있는 기업은 고작 40∼50개 정도에 불과하다. 이처럼 수많은 기업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경험이 없는 정상배들이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적산을 불하받아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몇몇 기업인은 적산을 불하받자마자 기계따로 원료따로 토지따로 팔아먹기까지 했다. 따라서 적산기업을 불하받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는 기업인들을 절대 과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적산불하는 행운이란 잡기도 어렵지만 이를 잘 활용하는 것이 더욱 어렵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우리나라 경제사의 큰 교훈이 되고 있다.<이종재기자>이종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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