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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유엔「구적국조항」삭제에 총력/나카야마외무 외교공세(특파원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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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유엔「구적국조항」삭제에 총력/나카야마외무 외교공세(특파원리포트)

입력
1991.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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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제외 강대국들 “냉담”/「옛동료」 독·이 “현안에 신경을” 간접 비난일본은 과연 유엔헌장의 「구적국조항」을 삭제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일본 외교가의 최대관심이 여기에 쏠려있다. 나카야마(중산태랑) 외무장관이 세계에서 가장 바쁜 장관이란 소리를 들을 만큼 분주히 세계각국을 들락거리는 것도 이같은 「비원」을 풀기 위함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한다면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소련을 빼고는 모든 강대국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다 「동료」라고 할 독일 이탈리아 등도 그리 탐탁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적국조항이란 유엔헌장 제53조 107항을 이름인데,이 조항은 2차대전당시 연합국의 적이었던 나라들에 대해서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 없이도 강제행동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라 이름은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지만 일본 독일 이탈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핀란드 등 7개국이 해당된다. 이 나라들이 또 다시 침략행위를 하면 안보리결의 없이도 무력제재를 가하기 위한 조치이다.

나카야마 외무장관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 조항이 이미 사문화됐고 「시대착오적」이라며 삭제를 제안했다. 다른 「구적국」들은 조용한데 일본만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유엔경비를 제공하는데도 헌장상 차별대우를 받는 것은 국민감정에 납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제안 이후 나카야마 장관은 미·소·중·영·불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 다섯나라를 주대상으로 활발한 외교공세를 펴왔다. 특히 소련에 대해서는 경제협력을 카드로 적극적인 로비를 벌여 동조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셰바르드나제 전 소련 외무장관이 자난해 12월 베이커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에서 『구적국조항이 무효임을 양국 공동성명으로 선언하자』고 제안했던 것도 일본의 입김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태도는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다. 미국이 이처럼 거부감을 표시하자 소련은 상임이사국 5개국 성명으로 하자는 수정안을 냈으나 끝내 동의를 얻지 못했다.

일본의 직접적인 타진에도 미국은 『삭제하는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는 외교적 수사로 얼버무렸다. 하지만 『헌장이 개정되면 여러가지 문제가 따르게 돼 곤란하다』는 말이 함축돼 있다.

중국·영국·프랑스도 마찬가지. 이들은 『일본의 입장은 이해한다』 『주장은 잘 알겠다』면서도 한결같이 거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유엔주재 일본 대표부의 외교관이 한 전승국 외교관에게 이 얘기를 꺼냈을 때 그는 『입장은 이해하지만 일본이 우리의 적국이었다는 엄연한 사실을 잊지말아달라』고 쐐기를 박았다고 한다.

일본과 같은 입장인 독일·이탈리아 등 6개국의 반응도 냉담하다. 헝가리같은 나라는 『그것은 과거의 유물이다. 그것보다는 지역분쟁이나 빈곤문제같은 초미의 관심사에 눈을 돌려야 한다』며 간접적으로 일본의 태도를 비난하고 있다.

관련국들이 전폭적으로 동조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이 조항을 삭제하려면 유엔헌장을 개정해야 한다. 헌장개정에는 우선 가입국 3분의 2의 찬성을 얻어야 하며,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가입국 3분의 2의 비준이 따라야 한다.

일본의 요청으로 이 조항을 삭제하는데 동의할 나라가 얼마나 될 것인가. 헌장개정이 논의된다면 반드시 다른 문제들도 거론될 것이다. 「다른 문제」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전승 5개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독점,거부권이라는 막대한 권한을 휘두르는데 대한 제3세계 제국의 불만이다. 또 각 위원회의 의석배부 문제도 미묘한 갈등을 초래할 것이다.

엄청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상대국들이 이러한 논의를 원할리가 없으므로 그들은 헌장개정 운운하는 소리 자체가 듣기싫다. 한 전승국 외교관은 『판도라상자를 열고 구적국조항 삭제문제만을 꺼낼 수는 없다』고 솔직히 말하고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고싶어 우선 이 조항부터 삭제하려는 일본의 비원이 언제쯤 성취될수 있을지 유의해야 할 일이다.<동경=문창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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