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쌀 2가마 처음 전달받아/“큰 누나 월급으론 생활 빠듯해도/함께 모여 살기 위해선 참아야죠/하루빨리 보답하고 싶어”사랑의 쌀 한 줌은 소년가장의 살림을 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가슴에 드리운 그늘을 걷고 밝은 희망을 심어주었다.
지난해 어린이날 하루전 사랑의 쌀 2가마를 전국 1만3천여 소년소녀 가장 중 처음으로 전달받았던 정선연군(9·인헌국교4) 4남매는 서울 관악구 봉천2동에서 봉천본동 899의26 은천고갯마루로 이사가 있었다.
지난 6일 하오 두 사람도 비껴가기 힘든 골목길 계단을 올라 간신히 선연이의 3평 남짓한 단칸 셋방을 찾았을 때 선연이는 지난번처럼 점심을 먹고 설거지에 여념이 없었다.
기자를 금세 알아본 선연이는 『오늘은 내가 설거지 당번』이라며 빨래를 널고 있던 둘째 누나 미연양(17)을 바라보고 환하게 웃었다.
1년 동안 4남매의 살림은 결코 나아진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를 더 먹어 방은 좁아지고 학교에 다니는 선연이와 셋째 지연이(14·중2)의 학용품 값이 늘어간다.
『그렇지만 막내 선연이가 얼마나 대견스러워졌는지 몰라요. 국민학교 어린이들이 돈을 모아 사랑의 쌀을 보내줬다는 말을 듣고 자기도 커서 돈을 벌면 남을 돕겠다는 얘기를 하곤 해요』 미연이의 설명이다.
이집의 가장이었던 선연이 큰 누나 수연양(19)은 계속 서울근교의 음식점에서 일하며 주말에만 와 동생들을 보살피고 있다. 막내 선연이는 이제 큰 누나가 직장이 멀다며 집에 오지 않는 진짜 이유를 알 만큼 컸다. 그래서 큰 누나를 제일 좋아하는 선연이의 가장 큰 소망은 방이 2개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연양은 3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 세 동생이 대학에 갈 때까지 뒷바라지를 하려면 절약하고 저축해야 하기 때문에 동생들과 함께 살고 싶어도 참는다.
재작년에 중졸 검정고시에 합격해 단과반 학원에 다니며 고졸검정고시를 준비중인 둘째 미연이의 학원비와 막내 선연이의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인 태권도 도장비를 대기에도 빠듯하다.
두 여동생이 신문을 돌리고 분식점에서 학비를 벌던 것도 그만두게 할 만큼 수연양은 동생들의 공부에는 「가혹한」 가장이 됐다.
선연이네는 6년 전만 해도 단란한 가정이었다. 관악구청 청소원으로 20년 이상 일해온 아버지의 리어카를 어머니와 딸들이 번갈아 밀며 가난했지만 웃음을 잃지 않았다. 85년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3년 후에 아버지마저 화병으로 세상을 떴다. 중학 2학년이었던 장녀 수연양과 중학교에 진학해야 할 둘째 미연양은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그 동안 오르는 방값에 밀려 이사도 네번했다.
처음에는 인정 많았던 아버지를 기억하는 이웃들로부터 도움도 받았으나 점차 끊어지고 친척도 없어 네 남매가 의지하며 살아나가야 한다.
4남매는 그래서 집안일도 나눠하며 각자 자기일은 스스로 알아서 한다.
둘째 미연양은 그 동안 사랑의 쌀을 통해 알게 된 김태근 목사(34)가 운영하는 관악산 결식노인을 위한 「사랑의 쌀밥식당」에서 설거지를 돕는 자원봉사를 틈틈이 했다. 더 이상 도움만 받기에는 자존심이 상한다는 게 감수성이 유다른 미연양의 말이다.
빈곤과 외로움 속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사는 4남매의 모습이 사랑의 쌀을 나누는 것만으로 자족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한기봉 기자>한기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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