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유지 탈피 능동적 개혁정치를노태우 대통령의 임기도 이제 반을 지났다. 마라톤선수로 말하자면 반환점을 막돌아 다시 출발점으로 회귀하기 시작한 시점이다. 마라톤경주에서 선두그룹이 반환점을 넘어서면 대체로 그날 경기의 향방을 얼마간 점칠 수 있다. 기록경신의 가능성을 비롯하여 유망한 우승후보자의 면모도 점차 가려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시점은 아직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때이기도 하다. 선두가 바뀔 가능성은 물론이거니와 선두주자들의 치열한 경쟁이나 후반 스퍼트로 의외의 기록이 나올 수도 있다. 노태우 대통령도 말하자면 이 시점에 와 있는 셈이다.
이 단계에서 대통령으로서의 그와 그의 정책에 대한 비판적 조명이 필요한 것도,아직 그에게 충분한 기회가 남아있고,또 그에 대한 국민의 기대도 고갈되지 않은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집권후반기로 들어선 요즘 노태우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회의와 불신이 국민들간에 크게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리더십의 가장 두드러지는 측면이 있다면 수동적이라는 점이다. 대체로 그는 능동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결연히 나서기 보다는 인내심을 갖고 문제가 스스로 해결되기를 기다리는 편이다. 따라서 그는 차분히 볼을 네트 너머로 보내면서 공격적인 상대방의 실수를 유도하는 수비형 정구선수를 연상시킨다.
집권초기에는 그의 수동적 리더십이 체제의 민주화에 얼마간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억압ㆍ잠재화되었던 갈등들이 폭발적으로 분출하는 과정에서 성급한 개입이나 권위주의적 문제해결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사회의 민주주의 학습에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수동적 리서십은 첨예한 갈등으로 점철되는 과도기를 살아가는 정치적 슬기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의 수동적 리더십은 집권초기를 지나면서 점차 그 역기능이 두드러지기 시작한다.
난국타개를 위한 뚜렷한 비전과 비상한 결단이 절실히 요망되는 시기에 그의 수동적 리더십은 체제위기를 장기화ㆍ만성화시켰고 정책실기를 하는 경우가 잦았다. 무엇보다 정치적 목표설정이 불분명하여 그때 그때 우리 대통령의 중점정책이 무엇인지 아리송할 때가 많았고,문제해결에 있어서도 맺고 끊는 것이 분명치 않아 자주 미봉책에 그치거나 상황호도의 인상을 풍겼다. 이번에 파문을 일으킨 내각제 합의각서 건의 경우도 대통령이 「유감」과 「연내유보」라는 반응을 보였으나,연말까지 두달 남긴 시점에서 연내유보라는 대답이 어떤 설득력을 가질지 의심스럽다.
한국정치가 최근 정처없이 표류하고 있는 것도 노태우 대통령의 수동적 리더십과 무관할 수 없다. 오늘 우리가 태평가나 읊조리는 시대에 산다면 혹 「무위」의 정치가 최상의 정치일 수 있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세계적 규모의 변화의 격류속에서 민주화,성장과 분배,그리고 통일이라는 세겹의 엄청난 과제에 쫓기고 있는 우리의 형편을 고려할 때,문제해결을 시간의 흐름에 맡긴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요즘도 경제쇠퇴와 「UR태풍」 앞에 속수무책인 정책부재가 안타까울 뿐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리더십의 두번째 특징은 다분히 체제유지적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 정치가 이른바 총체적 난국을 돌파하기 위하여는 지속적인 개혁정치가 요구되고 있으나 노대통령이 추구하는 정치의 주조는 현상유지,체제보위의 성격이 너무나 짙다. 「구국」 차원의 결단이라고 공언했던 3당 합당이 고작 집권동기에서 비롯된 3자간의 「밀실야합」의 차원임이 백일하에 드러난 오늘,현 정권의 개혁의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신뢰하기 어렵게 되었다.
민생동기에 앞서는 권력동기,그 얼굴이 그 얼굴인 인사정책,「보안사」 파동에서 드러난 군사문화의 엄연한 잔존,소리없이 스며드는 공안정국의 어두운 그림자,이 모든 것이 이 나라의 먼 앞날과 통일문제를 본질적 차원에서 고민하는 큰 정치의 모습은 분명 아닐 것이다. 현상유지에 급급하다보면 정치적 이상과 도덕성은 실종되어 벌거벗은 권력정치의 치부만 남기기 일쑤이다.
노대통령의 업적중 비교적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북방정책의 경우도 그것이 내치로 이어지지 못하는데 그 본질적 한계가 있다.
남북대화에 있어서도 한낱 수단에 불과한 「정상회담」의 성사가 모든 대화의 유일목적처럼 전화되고 있는 것도 걱정스럽다. 일의 목표와 본질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본말이 전도되고 외화가 내실을 압도하게 마련이다.
비록 수동적이라고는 하나 노태우 대통령의 체제보위적 집념은 자주 그를 「물태우」에서 「불태우」로 만든다. 여기에서 그의 양면성이 드러난다. 집권초기에 격심한 노사분규등 첨예한 사회경제적 갈등으로 사회가 온통 어지러울 때,오래 참으며 거의 「무위」로 일관하던 그가 사회혼란이 일정수위를 넘어 중산층의「레드콤플렉스」가 무섭게 발동하는 시점에 이르면 서서히 정치상황을 공안정국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는 많은 이가 실감하지 못하게 비교적 견고한 체제보위의 벽을 쌓는다. 그런가하면 부정부패에 대한 사회적 불만에 대해서는 「사정」의 서릿발을,또 민생치안부재에 대해서는 「범죄전쟁」을 벌인다. 정책실기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사회혼란에 혼이난 국민들은 곧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가 자주 터뜨리는 각종 「선언」들도 체제보위를 위한 맞불작전일 때가 많다.
그러나 그는 비교적 상징조작에 능한 대통령이다. 아직도 많은 이에게 온화하고 유연한 이미지를 선사하며,민주성과 공개성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 그가 구사할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자 잠재력이다. 그러기에 그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그는 이제 남은 임기에 민족의 청사를 위해 새로운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선 그는 5공의 악몽과 민자당의 굴레에서 벗어나 국가와 민족을 우선시하는 대승적 관점에서 능동적 개혁정치를 펼쳐야 한다. 아울러 정치의 도덕성을 회복하여 국민에게 희망과 믿음을 선사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이러한 난국돌파에의 정공법만이 나라와 그 자신을 위한 가장 확실한 정치적 안전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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