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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특파원 통일예멘을 가다:5ㆍ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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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특파원 통일예멘을 가다:5ㆍ끝

입력
1990.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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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력에 의한 통일」남북모두 긍지/강대국 간섭 「아랍단결」로 극복/남 석유ㆍ항만 북 기술ㆍ노동력 등 경제적 실리 부합/회교도 통합 일조… 시민들 “다음은 한국차례”위로남북예멘 어디를 가도 예멘인 모두가 긍지를 느끼는 것은 「자력에 의한 통일」이다.

72년부터 전예멘인의 열망에 부응한 양쪽 지도부간의 대화로 통일의 실마리를 하나 하나 풀어간 18년 노력의 결집에 대한 자긍심을 쉽게 관측할 수 있다. 72년은 공교롭게도 우리의 7ㆍ4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해이기도 하다.

한반도와 아라비아반도의 예멘이나 모두 같은해 상호대립관계에서 탈피,민족공존을 위한 남북화합시대의 개막을 선언한 것이다.

그러나 똑같이 출발한 예멘이 통일을 달성한 반면 우리의 빗장은 아직도 굳게 잠겨 있다.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얘기할 때 예외없이 거론되는게 미소중일 등 주변4개국의 영향력인 것처럼 예멘도 비슷한 환경이나 예멘은 이를 아랍국의 전통적 단결력으로 이겨냈다. 628년 예멘에 전래된 이슬람문화는 이후 수세기에 걸쳐 아라비아반도는 물론 사하라 이북의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의 일부에까지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이른바 「움마(이슬람공영권)」로 불리는 이슬람문화권 안에서 다양한 민족이 하나의 언어ㆍ문자ㆍ종교ㆍ문화로 녹아들었다.

현재 움마를 지향하는 국가의 수는 예멘을 포함해 모두 22개국이다. 예멘의 주변강대국인 사우디는 물론 오만 소말리아 지부티도 모두 같은 공동체의식 아래 형제국으로 칭하고 있다.

궁극적인 아랍권 통합을 목표하는 움마에서 지역열강인 이라크 시리아의 대립,부유한 GCC(걸프협력위)와 예멘 이라크가 가입돼 있는 ACC(아랍협력위)의 미묘한 알력이 걸림이 되고 있지만 외세에 대항한 일체감은 대단한 결집력을 보이고 있다.

비록 예멘과 사우디간의 반목은 지속되고 있지만 움마 안에서는 외형상 단결이 우선된다. 지난 33년 국경분쟁을 일으킨 외에도 62년 7년 내전시 왕정파를 지원한 사우디에 대한 예멘의 구원은 뿌리가 깊다. 익명을 요구한 예멘의 한 고위공직자는 예멘­사우디 관계를 묻자 「한일관계」라고 대뜸 답변했다. 움마에 의해 통합된다면 몰라도 10년 20년이 지나도 사우디에 빼앗긴 실지회복은 꼭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28일 바그다드에서 열린 아랍정상회담에 참석한 살레 통일 예멘 대통령은 통합을 6개월 앞당긴 이유의 하나로 「외세간섭의 배제」를 들었다. 은근히 사우디를 빗댄 말이다. 남ㆍ북예멘간의 통합이 진전되자 사우디가 은밀히 회교원리분파주의자들을 지원해 통합에 반대하도록 했다는 소문이 중동외교가에 널리 퍼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랍의 단결을 과시한 정상회담에 참석한 사우디의 파드국왕은 예멘통합에 전폭적인 지지와 지원을 약속했다.

거대한 응집력을 보이며 빠르게 진행되던 동ㆍ서독통합이 나토ㆍ바르샤바라는 과거의 적대체제,주변국간에 얽힌 이해로 약간 질척거리고 있는 것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또 하나는 동구권의 변혁을 비롯해 동ㆍ서독통합을 이루게한 밑바탕에 인본적 기독교정신이 공통적으로 형성돼 있는 것처럼 남ㆍ북예멘간의 통합과정에서는 전통문화의 전부인 회교적 율법이 작용했다는 점이다.

통합이전의 공산 남예멘에서는 온갖 사회주의 구호도 하루 네번씩 기도시간을 알리는 모스크 이맘의 스피커 소리에 압도당했었다는 아덴시거주 외국인의 말이 이를 실감나게 한다.

통일논의를 위해 만났던 양쪽정상들의 입에서도 「동지」대신 「형제」라는 말이 자연스레 튀어나왔다고 한다.

그에 반해 끈끈한 연결고리인 한민족 전통문화가 한쪽의 유물론적 부정으로 균형을 잃고 단편적인 항일투쟁의 선명성이나 체제우위논쟁만 거듭하고 있는 우리현실이 현지에서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외에도 예멘의 통합이 비교적 쉽게 이뤄진 큰 이유는 남예멘의 공산정권이 자생적 공산세력이라기 보다 신생국의 통치원리로 사회주의를 택했을 뿐이라는 점이다. 6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한 반작용으로 사회주의정권이 들어섰으나 지도부는 반식민투쟁을 벌인 민족주의 집단으로서 북예멘의 공화파 지도부와 연계돼 있었다. 당시 양쪽 지도부는 물론 현재의 지도층 대부분이 50ㆍ60년대 근대식 교육을 가르치던 타이즈 근교의 같은 학원 출신이라는 사실도 무시 못한다.

통일에의 첫발을 내디딘 72년이 남예멘에 공산정권이 수립된 70년으로부터 불과 2년뒤인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그만큼 대립의 골도 깊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남예멘이 세계적 해빙무드 속에 소련의 지원이 끊기자 경제적 파산을 눈앞에 보며 북예멘에 「흡수통합」된 것은 당연한 귀결처럼 보였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에티오피아 공산정권이 종족주의의 심각한 내전에 휘말려 있는 것에 비해 남예멘은 기댈 「큰형」이 있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민족의 대통합이라는 외형적 명분외에 서로의 실리가 부합된 측면도 있다.

북쪽으로서는 남예멘에 매장된 20억배럴 이상의 미개발 원유와 영국식민지시대 지어진 정유시설 저유소 및 이를 수출할 완벽한 항만시설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남측으로서는 북의 앞선 기술과 풍부한 노동력,또 통일과 공산주의 청산이라는 이미지 개선 작업을 통해 외국기술 도입 및 외자유치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어느쪽이나 통일된 국가의 이익이라는데 의의가 있다.

예멘의 통일로 이제 지구상의 분단국가는 7월 경제통합을 앞둔 독일을 제외하면 한반도와 중국,단 두곳만 남게 된다.

이번 예멘통합 취재동안 간간이 접할 수 있었던 한소정상회담 소식과 그에 뒤따른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변화 조짐은 통합현장에 서있던 기자에게 또다른 감회로 와닿았다. 예멘 체류기간중 한국인이라는 신분을 안 예멘인으로부터 『다음은 한국이다』라는 위로의 말에 시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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