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면 수입”한국에도 문제/기술개발외면 복제 그쳐 일 독점벽 못깨/「노하우」축적안돼 낙후 부채질기술에 관한한 우리나라는 일본이 버티고 선 길목을 지나지 않을수 없다. 우리기업들이 기술의 탈일본을 시도하고 있지만 번번이 이 길목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고배를 들고 있다. 말하자면 일본이 지키고 선 이 길목이 선진국으로 진입하느냐 중진국으로 머무느냐를 판가름짓는 분기점인 셈이다.
일본은 웬만한 기술을 넘겨주다가도 우리기술이 이 길목 가까이 왔다 싶으면 돌연 태도를 바꾼다. 협조상대에서 경쟁상대로 변하는 것이다. 기술이전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가 어렵게 자체개발한 기술도 저들의 덤핑공세로 더 나가지 못하고 고사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VTR의 경우 우리에게 기술이전을 했다가 우리제품이 해외시장에서 일본제품과 경합을 벌이자 우리가 개발해내지 못한 핵심부품의 가격과 공급을 조절함으로써 우리제품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일본이 기술이전을 꺼리는 바람에 별수없이 막대한 투자를 해 국산개발을 하지만 일본의 방해작전에 또다시 벽에 부딪치기 일쑤다. 전량 대일 수입에 의존하던 핵심부품과 소재를 국내기업들이 개발하기 전까지는 가격을 올리고 납기를 조절하는등의 수법으로 독점적지위를 누리다가 우리가 어렵사리 개발해놓으면 이때를 맞춰 가격을 터무니없이 내려 국내개발업체가 뿌리를 못내리게 하고 해외시장에서도 덤핑수출을 자행,수출길마저 차단해 버린다.
정부의 국산화시책에 따라 국내업체가 개발에 성공한 팩시밀리 기록장치의 핵심부품인 TPH,인쇄회로기판 소재의 동박,대형컬러 TV 브라운관용 유리,VTR의 각종 핵심부품과 소재들이 일본업체의 덤핑공세로 판로를 찾지 못한채 가동률마저 떨어져 경영위기를 맞고 있다.
일본의 이같은 방해는 앞으로 더욱 심하면 심했지 누그러들것 같지가 않다.
이는 일본이 우리기업을 지나치게 경쟁자로 의식하고 있기 때문인데 내면을 들여다보면 기술독점을 계속 구가 하겠다는 속셈이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이 금방이라도 일본을 따라잡을 것처럼 엄살을 부리는 것도 실은 한국이 위협적인 상대가 될 가능성이 많으니 주의하라는 경고정도로 보면 틀림없다.
우리에게 전혀 잘못이 없는것도 아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우리에게 더 문제가 많다는 것이 업계의 고백이다. 오늘날의 대일기술예속,늘어만 가는 대일무역적자는 우리기업들이 자초했다는 것이다.
호황일때는 기술개발을 외면하고 기술이 필요하면 자체개발하기보단 어떻게 하면 돈적게 들이고 손쉽게 기술을 손에 넣을 것인가에만 매달렸다. 어렵게 기술이전계약을 체결해 놓고도 어줍잖은 자존심으로 숨겨놓은 기술은 고사하고 배워가라고 내놓은 기술도 익히지 못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적인 반성이다.
봉제완구를 수출하는 모업체사장 최모씨(52)는 『2∼3년전에는 물건 만들어내기에 바빴다. 만들기만 하면 무조건 수출이 되었기 때문에 물량 늘리는데만 정신이 팔렸다. 주위에서 「기술개발」을 충고했지만 물건이 없어서 못파는 판이라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물건이 없어서 못팔때 기술개발을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값싼 봉제완구는 중국ㆍ인도네시아ㆍ필리핀등에 밀리고 고급작동완구는 일본ㆍ대만ㆍ독일등에는 눌려 수출길이 막혔다는 최씨는 『기술개발을 소홀히 한 탓으로 호황때 벌어들인 이익보다 더 큰 손실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수출에 고전하고 있는 기업은 대부분 최씨와 같은 입장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응분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남이 애써 개발한 기술을 획득하려는 자세 또한 기술낙후를 부채질했다. 우리쪽에서 보면 어려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일정수준의 기술을 활용할수 있기 때문에 이익으로 보일지 몰라도 기술의 복제에 그칠뿐 새로운 기술개발을 스스로 막는 행위나 다름없다. 기술이란 완성된것 못지않게 개발과정에서 얻어지는 노하우가 더욱 중요하다. 이 노하우가 축척되어야만 또 다른 새로운 기술이 개발될 수 있는것이다. 대강 보면 우리제품이나 일본제품이나 비슷해 보이는데 하나하나 뜯어보면 현격한 수준차이를 보이고 있고 새로운 제품이 출현하는데 시일이 걸리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노하우의 축적이 없기 때문이다.
기술을 이전받는 자세에도 문제가 많다. 일본의 한 자동차관계자는 한국자동차 메이커와의 기술제휴계약에 따라 1년간 국내에서 기술교육을 실시했는데 처음에는 국내기술진의 기술습득속도에 놀라움을 금치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면서 이런 놀라움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기술을 가르치려해도 「그 정도는 이미 알고있다」는 식으로 대강대강 넘어가고 자존심때문인지 꼬치꼬치 캐묻는 일이 거의없다는 것이다. 이 기술자가 기술교육을 끝내고 돌아갔다가 1년후 다시와서는 또 한번 놀랐다는 것이다.
그때 가르쳐준 기술에서 한발짝도 더 나아간 점이 없음은 물론 그때의 기술마저 40∼50%도 활용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일본인은 『누가 뭐래도 한국이 일본을 추격할수 없음을 확인했다』고 귀국후 회사에 보고했다는 후문이다,
일본에 기술연수를 받으러가는 기술자들도 시간만 채운다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최근 모기업에서 기술연수를 위해 30명을 일본에 보냈는데 3분의1이 일이 고되다고 귀국했다고 한다. 독일의 철강기술 을 파악하기 위해 쇳물에 팔을 집어넣고는 붕대를 싸맨채 귀국했다는 일본의 기술자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기업인,기술자 스스로 기술을 배우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절실하다.<방민준기자>방민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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