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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예능과 사라진 엄마표 손맛

입력
2024.10.18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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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요리 경연 예능 '흑백요리사'의 한 장면. 백종원 심사위원이 블라인드 심사를 하고 있다. 넷플릭스 캡처

넷플릭스 요리 경연 예능 '흑백요리사'의 한 장면. 백종원 심사위원이 블라인드 심사를 하고 있다. 넷플릭스 캡처

직장생활로 인해 매번 바깥에서 끼니를 때우다 보면 가끔 예전 엄마표 손맛이 그리울 때가 있다. 먹을 때는 몰랐지만 갓 지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끈한 밥 한 숟갈에 그 흔한 밑반찬을 얹어 입안으로 넘기면 음식물이 가슴 한가운데에 난로처럼 자리 잡으며 온몸에 온기를 퍼트렸다. 사랑으로 만들어진 밑반찬들은 엄마의 마음을 들키기 쑥스러운 듯 항상 투박한 종지들에 담겨 식탁을 가득 채웠다.

요즘 따뜻한 집밥이 그리워 본가를 찾을 때면 엄마표 손맛이 전해주는 느낌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보다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투입해 만들어진 음식들은 화려하게 진화했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아쉬움과 서운함이 느껴진다.

엄마는 음식 손맛이 꽤 좋으셨다. 주변 사람들의 음식평도 좋다보니 음식을 하실 때면 신이 나서 이웃과도 나눌 수 있도록 과하게 많이 준비하셨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모든 음식을 전통 방식대로 하시다 보니 재료 손질에 손이 많이 갔고 조리시간은 길었다. 엄마표 손맛의 9할 이상은 정성과 시간이었다.

엄마의 손맛이 갑자기 변한 건 셰프테이너(주방장+예능인)들이 출연하는 쿡방이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쿡방에서는 경기 불황이 지속되는 바쁜 현대사회를 보내고 있는 1인 가정과 혼자 사는 청년층이나 젊은 부부들을 겨냥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간단하게 매번 그럴싸한 음식을 만들어냈다.

특히 유명 요리전문가가 전파한 '만능 양념장'은 주부들에겐 성수(聖水)와도 같았다. 미리 만들어 놓은 양념장을 간단히 손질한 재료와 섞어 물 양만 조절해 끓이면 국, 찌개, 조림 등이 뚝딱 완성됐고 조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되는 주부들은 환호했다.

음식이 순식간에 만들어지니 밥상에 오르는 밑반찬의 개수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맛은 같았다. 간이 센 만능 양념장으로 인해 원재료 본래의 맛은 감춰졌고 획일화된 양념의 섭취가 지속될수록 먹는 행위가 지루함으로 다가왔다.

다행히도 나의 본가에서 만능 양념장의 인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입맛은 유행에 이끌려 맵고 짜고 시고 좀 더 자극적인 것을 갈구했지만 결국 미식의 끝은 엄마표 손맛이었다.

자동차 애호가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튜닝의 끝은 결국 순정'이라는 명언처럼 음식도 그러했다. 온갖 화려한 기능을 추가하고 개인적인 취향에 맞게 끊임없이 장식해 보지만 결국 가장 아름답고 안정적인 모습은 처음 나온 그대로의 상태임을 깨닫는다는 뜻이다.

먹는 것보다 사는 것에 집중하고 있는 요즘, 또다시 요리예능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다. 재미있게 정주행하면서 한편으론 엄마의 요리 창작 욕구가 다시 불타오르지 않을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잠시 했다.

지난 주말 본가를 찾아 점심을 먹으며 눈을 감고 정성스럽게 놓인 가지무침을 맛봤다. 내 자신이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났다. "오늘 가지무침은 양념의 간이 타이트(정확)했지만 채소의 익힘 정도가 이븐(일정)하지 않아서 평가를 보류하겠습니다." 엄마표 손맛을 오랫동안 맛보고 싶어서 감히 '보류' 평가를 드렸다.


류효진 멀티미디어부장 jskn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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