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 75년 이래 첫 공식적 양자관계 설정
尹 "남중국해 해양질서 확립 위해 협력 강화"
필리핀 인프라 사업 지원... "기업 진출 마중물"
한국과 필리핀이 7일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에 합의했다. 1949년 수교 이래 75년간 양국이 공식적 양자관계 설정을 맺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양국은 구체적으로 향후 남중국해에서의 규칙 기반 해양질서 확립 등 국방·방산·해양 분야에 걸친 안보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경제 분야에서는 필리핀 도로와 교량 등 대규모 인프라 건설 사업에 한국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을 투입하기로 했다. 우리 기업이 필리핀에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동남아 3국을 순방 중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오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직후 전략적 동반자 관계 수립에 관한 양해각서(MOU) 교환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그동안의 양국 관계 발전은 피로 맺은 신의와 연대에 기초를 둔 것"이라며 "오늘 저와 마르코스 대통령은 양국 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해, 한-필리핀 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두 정상은 이날 수립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의 협력을 강화해 나갈 방침이다. 특히 안보 분야 협력과 관련해 양국 정상은 역내 핵심 해상 교통로인 남중국해의 평화와 안정, 안전의 중요성에 공감했다. 윤 대통령은 "양국은 남중국해상 규칙 기반 해양 질서의 확립과 국제법 원칙에 따른 항행 및 상공 비행의 자유를 위해 계속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해양경찰과 필리핀의 해양경비대는 이번 윤 대통령 방문을 계기로 체결한 '해양협력 MOU'를 토대로 해상 초국가범죄 대응과 정보 교환 등 해양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다만 이런 합의 내용이 남중국해 문제에 민감한 중국을 자극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역내 평화와 해양 질서 확보를 위해 명분 있는 훈련인 만큼 큰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앞서 필리핀 역내 훈련에 한국군 참여 규모나 내용이 확대돼 왔는데 중국이 큰 반응을 보인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경제 분야 협력과 관련해 양국은 필리핀 라구나 호수 순환도로와 PGN 해상교량 건설 사업에 대한 MOU를 체결했다. 우리 기획재정부가 EDCF를 통해 각각 사업에 9억5,000만 달러, 10억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2조6,200억 원이 넘는 규모로 EDCF 사업 기준 역대 1, 2위 수준이다. 박춘섭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브리핑에서 "EDCF 사업 규모 확대는 우리 기업들의 대규모 인프라 사업 진출 기회가 더 많아진다는 뜻"이라며 "필리핀 지역경제 발전과 우리 기업의 대형 사업 수주를 동시 지원하는 '윈윈' 협력"이라고 설명했다.
원전 관련 성과도 소개됐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필리핀 에너지부와 '바탄 원전 타당성 조사 MOU'를 체결했다. 필리핀 바탄 원전은 1986년 건설 중단 후 장기 휴지 상태다. 하지만 마르코스 대통령 취임 후 원전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며 건설 재개 논의가 시작됐다. 한수원은 원전 건설 재개 관련 경제성과 안전성 등 사업 추진 타당성을 조사할 예정이다. 향후 양국 간 원전 협력의 기틀이 될 수 있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윤 대통령은 이어진 한-필리핀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해 "원전 르네상스 시대를 한국과 필리핀이 함께 준비해 나가조자 한다"며 "이번에 체결된 바탄 원전 타당성 조사 MOU를 이행하면 양국 간 원전 협력이 본격화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외에 양국 정상은 △필리핀 내 한국 농기계 생산단지 조성 △필리핀 공공행정 부문 디지털화 등 지원 △양국 인적 교류 뒷받침 등에 합의했다. 윤 대통령과 마르코스 대통령은 핵 개발 등 북한의 도발과 불법적 북러 군사협력을 경고하고, 북한 비핵화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이행을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한국 정부의 '8·15 통일 독트린'에 대한 지지도 표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한-필리핀 비즈니스 포럼' 참석 일정을 끝으로 두 번째 순방국인 싱가포르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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