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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 책상서 태어난 나를 처음 안은 사람...치매 걸린 할머니, 이제 내가 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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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 책상서 태어난 나를 처음 안은 사람...치매 걸린 할머니, 이제 내가 돌봅니다"

입력
2024.10.08 10:30
수정
2024.10.08 11:05
21면
0 0

유튜브 '롱롱TV' 운영자 김영롱씨 전화 인터뷰
에세이집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
치매 할머니와의 따뜻한 일상 찍어 올려

치매 걸린 할머니와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집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를 쓴 김영롱(오른쪽부터)씨와 그의 할머니 노병래씨, 엄마 구숙희씨가 공원에서 산책을 하며 활짝 웃고 있다. 김영롱씨 제공

치매 걸린 할머니와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집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를 쓴 김영롱(오른쪽부터)씨와 그의 할머니 노병래씨, 엄마 구숙희씨가 공원에서 산책을 하며 활짝 웃고 있다. 김영롱씨 제공

할머니 노병래(93), 엄마 구숙희(63), 손녀 김영롱(36), 성씨 다른 여성 삼대가 함께 사는 집. 이 집의 시간은 노씨의 '치매 시계'를 따라 돈다. 5년 전 치매 중기 진단을 받은 노씨를 딸과 손녀가 집에서 돌보기로 하면서다. 몽롱하고 의욕 없는 노씨가 기력을 되찾는 시간은 매일 오후 4시. 치매로 인한 실수도 가장 적어지는 시간이다. 김씨는 이때 할머니와의 일상을 영상으로 찍어 남겼다. 구독자 14만 명의 응원을 받는 유튜브 채널 '롱롱TV'의 시작. "'롱 할매'의 치매 시계는 내일 다시 리셋 될 겁니다. 사랑하는 노병래 할머니 내일 4시에 만나요~."

'할머니 언제 돌아가시나' 했는데… 많은 것이 바뀌었다

롱롱TV 운영자인 김씨는 할머니의 얼굴을 오래 봤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쓴 에세이집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를 지난달 펴냈다. 전화로 만난 그는 "여태 같이 살아온 할머니를 집에서 돌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면서도 "우리 가족은 동화의 한 장면에서 튀어나온 사람들도,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도 아니다"라고 했다. 온라인 플랫폼에서 여성복을 판매하던 모녀는 재택 하며 번갈아 할머니를 돌봤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김영롱 지음·웅진지식하우스 발행·256쪽·1만7,000원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김영롱 지음·웅진지식하우스 발행·256쪽·1만7,000원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김영롱 지음·웅진지식하우스 발행·256쪽·1만7,000원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오래 보았다·김영롱 지음·웅진지식하우스 발행·256쪽·1만7,000원

처음 4년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한집에 묶여버린 치매 환자와 서투른 간병인 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시간"이었다. 급기야 '할머니는 언제 돌아가실까' 하는 생각을 하기까지. 김씨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무작정 온라인 쇼핑몰에서 9,790원짜리 삼각대를 하나 주문했다. "유튜브에 할머니와 나의 일상을 영상으로 만들어서 올리면 매주 할머니와 뭘 할지를 고민하게 될 테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다 보면 우리에게도 활력이 생길 것 같았죠."

노병래 할머니의 삶은 여전히 진행 중

유튜브는 많은 것을 바꿨다. 김씨는 할머니를 치매 환자로만 바라보던 시선을 '사랑하는 노병래 할머니' 쪽으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그는 "할머니가 치매를 앓는다고 모든 기억과 자아가 사라진 사람처럼 취급한 게 지금도 후회된다"면서 "우리가 아는 치매 환자가 대부분 말기인 환자의 모습인 탓에 사람을 병에 가려버리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고 했다. 세상과 단절돼 흐릿해져가던 노씨 역시 일상이 다채로워지면서 증상이 호전됐다.

어린 시절 김영롱씨와 그의 할머니 노병래씨의 모습. 김영롱씨 제공

어린 시절 김영롱씨와 그의 할머니 노병래씨의 모습. 김영롱씨 제공

김씨는 할머니의 모습을 찍으면서 "나에게 오롯이 전해진 최초의 사랑"을 되찾았다. 맞벌이하는 부모 대신 할머니가 그를 키웠다. 1988년 2월 21일 갓 완공돼 의료진도 없던 전남 영암군 보건소의 책상 위에서 태어난 김씨를 가장 먼저 품에 안은 이도 할머니였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차려주고, 교복을 다려주고, 구멍 난 스타킹을 꿰매주던 것도 할머니다. 그는 "어릴 적 할머니가 씻겨주고, 먹여주고, 칭찬해주신 게 다 기억난다"며 "내가 지금 할머니를 돌볼 수 있는 건 할머니가 내게 사랑을 많이 주셨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남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할머니와 올해 가을 단풍 구경을 가는 것이다.

김씨는 책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태어난 김에 만나 서로를 어느새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가족이자, 함께 성숙해져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세 명의 여성들. (…) 우리 삼대가 지나는 터널의 끝이 아름답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 여정이 절망스럽지만은 않다는 것, 중간에 꽃밭도 있고 해가 들어오는 공간도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나는 그 끝이 두렵지 않게 됐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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