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개 식용 종식 계획'에 현실성 논란
농가·식당 등 "전·폐업 준비기간 불충분"
사육 중인 46만 마리 처리 문제도 남아
"정부에서 돈 받고 개 사육 농장 닫으라고요? 그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지난달 30일 경기 여주시에서 만난 개 농장 주인 손원학(63)씨가 단언하듯 말했다. 20년간 농장을 운영해 온 손씨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개 식용 종식 계획'이 현실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폐업과 업종 변경에만 각각 2, 3년이 소요된다"면서 "최소 5년 동안 소득 없이 살아야 하는데 정부가 제시한 보상금으로는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어 "유통업자들도 개를 안 사는 마당이라 영업을 조금이라도 더 해서 푼돈이라도 벌어야 하는 실정"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농림식품축산부가 지난달 26일 '개고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며 개 농장 등 업계 종사자의 전·폐업 보상 대책을 발표했지만, 정작 당사자들 반응은 차갑다. 일단 개 식용 사업을 그만두면 뭘 먹고 사느냐의 문제가 있다. 또 어렵게 예산을 들여 개 농장 문을 다 닫더라도, 수십만 마리의 개들을 도대체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도 숙제다.
정부 대책은 뭔가
정부의 '개 식용 종식 기본계획' 골자는 개 농장주나 식당 주인 등에 대한 지원 대책을 마련해 조기 폐업을 유도하는 것이다. 농장주가 받는 폐업 지원금은 폐업 시기에 따라 차등 지급되며, 마리당 최소 22만5,000원에서 최대 60만 원이다. 폐업 이후 농장에서 풀려나는 개(잔여견)들은 지방자치단체 동물보호센터에서 관리되고, 수용 시설이 부족할 경우 농장에 관리를 맡긴다.
하지만 개 농장주들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개 1,200마리를 사육하는 송봉현(57)씨는 "조기 폐업하려면 소유권을 포기하고 정부에 개를 반납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관리 비용을 농장주에게 청구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하다"고 털어놨다. 15년째 개 농장을 운영해 온 강정윤(63)씨도 "판매·반납이 어려운 상황인데 3년 내에 종식이 가능할지 모르겠다"면서 "어떻게든 사업을 정리한다 해도, 손익분기점 등을 고려하면 기존 농장 부지를 살린 축종 전환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식용 개를 유통하는 상인들도 정부 계획에 비관적이다. 유통업자나 식당 주인들은 대부분 고령이라 재취업이 어렵고 변경할 만한 업종을 찾기도 마땅치 않다.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에서 58년째 보신탕 장사를 해온 배현동(77)씨는 "평생 이 일을 했는데 이 나이에 재취업이 쉽지 않다"면서 "업종 변경도 당장 몇백만 원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인근에서 2대째 개고기를 파는 김춘추(58)씨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풀려난 개들은 어쩌나
잔여견 대책에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보호센터의 빈자리는 약 2만 마리까지 수용이 가능한데, 현재 전국 농장에서 기르는 개는 46만6,000마리다. 모니터링 인력도 충분치 않아 잔여견들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신주운 동물권행동 카라 정책변화팀장은 "정부가 보호 인프라를 확충하겠다고 했지만 그 수는 여전히 부족하다"며 "농장에 임시 보호를 맡길 경우 감독이 적절히 시행되는지도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동물 복지'라는 방향성에 공감하지만 실현 가능한 '액션플랜'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식용 목적으로 사육되는 수십만 마리 개들을 농가에서 단기간 내에 처분하려면 어려움이 있다"면서 "잔여견에 대한 현실적 대책이 세워지지 않으면 개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수호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도 "농장주들이 사업을 정리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진퇴양난 상황"이라면서 "정부가 구체적인 출구전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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