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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입맛 따라 결말이 매일 바뀐다...게임 같은 이머시브 뮤지컬 '룰렛'

입력
2024.09.25 15:44
수정
2024.09.25 16:2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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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성의 공연한 오후]

편집자주

공연 칼럼니스트인 박병성이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뮤지컬 등 공연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뮤지컬 '룰렛'. 스포트라이트 제공

뮤지컬 '룰렛'. 스포트라이트 제공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인기 상권 뒤쪽 한적한 골목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연남장'이라는 건물이 있다. 낮에는 식당으로 운영되고 저녁에는 공연장으로 변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뮤지컬 '룰렛'(김가람 작·연출, 이한밀 작곡)이 이곳에서 공연되고 있다.

'룰렛' 공연 전 30분 동안 관객들은 등장인물인 포우의 저택을 방문한 손님이 돼 자유롭게 게임을 즐긴다. 게임 칩을 받은 관객들은 딜러 주위에 모여서 간단한 게임을 한다. 딜러가 카드를 열 때마다 환호와 한숨이 교차한다. 운이 좋은 관객은 저택 주인 포우나 그의 쌍둥이 동생 도일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머시브(immersive) 뮤지컬 '룰렛'은 관객들의 적극적 참여로 극이 진행되는 작품이다.

관객을 극 안에 포함시켜 전개하는 이머시브 시어터는 현장성이라는 공연의 속성이 도드라지는 형식이다. 관객은 수동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룰렛'은 관객들을 포우의 손님으로 참여시켜 포우, 도일, 아가사 세 명이 모든 것을 걸고 펼치는 한판의 도박을 근거리에서 목격하고 관여하게 한다. 아가사가 도일을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이는 과거 회상 장면에서는 선택받은 관객이 아가사의 옛 연인을 연기하기도 한다. 관객은 즉석에서 포우와 아가사를 두고 벌이는 룰렛 게임을 재현하고 장렬하게 죽는 연기를 펼친다. 의외성과 애드리브가 속출해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현장성이 빛나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고정 객석 없이 이동하며 관람

뮤지컬 '룰렛'. 스포트라이트 제공

뮤지컬 '룰렛'. 스포트라이트 제공

인기 네이버 웹툰 '오민혁 단편선' 중 '룰렛'을 토대로 이야기 틀을 잡고 이머시브 형식에 맞게 세부 설정을 추가했다. 백만장자 포우는 전 재산을 걸고 한판 도박을 벌인다. 가난한 도일은 목숨을 걸고 도박에 뛰어들고, 포우의 의붓누나이자 포우에게 내기로 연인을 잃은 아가사는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블랙 다이아몬드를 되찾으려 게임에 참여한다. 게임의 승자는 누가 될까.

거짓과 배신, 속고 속이는 순간이 되풀이되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된다. 게임에서 이기기 위한 세 명의 치열한 수싸움 속에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상황은 지루할 틈 없이 관객을 휘몰아친다. 관객들은 게임에 뛰어들어 자신이 지지하는 인물에게 칩을 걸고 내기에 동참한다. 마지막 승자도 관객에 의해 결정된다. 창작진은 포우, 도일, 아가사가 각각 게임에서 승리하는 버전을 마련하고 매일 관객이 지지한 인물이 승리하는 마무리를 보여준다.

포우, 도일, 아가사 역의 배우 외에도 극을 이끌어가는 러스트, 프라이드, 엔비, 그리드 등 네 명의 코러스가 등장한다. 이들은 각 인물의 분신이 돼 과거를 재연하고 게임을 진행하며 극을 이끌어 간다. 극 초반 도일은 한 우화를 들려준다. 먹이를 두고 다투는 개와 원숭이와 새에 대한 이야기다. 먹이를 낚아챈 새가 최종 승자가 돼 날아가지만 사냥꾼 총에 맞는다. 홀로 살아남아 게임에서 승리한 이들은 행복할 수 있을까. 모든 걸 건 게임에서는 그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 그날의 승자가 누가 됐든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은 사람들의 욕정과 자만심, 부러움, 탐욕을 자극하고 시험하는 게임의 전령들이다.

뮤지컬 '룰렛'. 스포트라이트 제공

뮤지컬 '룰렛'. 스포트라이트 제공

연남장은 여느 공연장과 다르게 고정된 객석과 무대가 없다. 무대 중앙에 커다란 테이블이 있고 이곳을 중심으로 홀 전체를 무대로 이용해 극이 진행된다. 관객들은 중앙 테이블석이나, 벽면의 기다란 의자에 자리를 잡을 수 있으나 극 중간중간 이동을 하며 관람한다. 관객들 사이로 배우들이 이동하기도 하고, 연남장 베란다 공간이 무대로 펼쳐지는 등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하며 역동적 장면을 연출한다. 움직이기도 참여하기도 싫다면 발코니석에서 배우와 관객을 관찰하며 공연을 관람할 수도 있다. 공연은 올해 12월 8일까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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