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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추적도 헛되이.. 손쉽게 풀려난 ‘메신저 학대범' [동물 과학수사 연구소 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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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추적도 헛되이.. 손쉽게 풀려난 ‘메신저 학대범' [동물 과학수사 연구소 ④]

입력
2024.09.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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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동물학대 범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여느 때보다 높습니다. 그러나 2022년 경찰청,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검찰에 송치되는 사건은 55.7%에 그치고, 그나마 송치된다 하더라도 법정에 기소될 확률은 31.9%에 그칩니다. 불송치, 불기소 사유 대부분은 ‘증거 불충분’.

동물은 말을 할 수 없어서 피해를 구체적으로 증언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학대당한 동물 상당수는 이미 숨을 거둔 뒤이기에, 증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학수사’가 더 필요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동물 과학수사’는 이제 시작 단계입니다. 그래서 동그람이는 지금까지 동물 부검이 범행을 입증하는데 성공하고 또 실패한 사례를 탐색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동물학대 수사에 무엇이 필요한지, 앞으로 어떻게 동물 부검 체계가 나아가야 할지 우리 사회가 고민할 기회가 되기 바랍니다.

지난 2022년 적발된 텔레그램 내 동물학대 대화방 모습. 이 사건의 주범은 고양이 7마리를 학대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2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제보자 A씨 제공

지난 2022년 적발된 텔레그램 내 동물학대 대화방 모습. 이 사건의 주범은 고양이 7마리를 학대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2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제보자 A씨 제공

지난 2022년, A씨는 두려운 마음을 억누르고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을 열었다. 메신저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 그는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매번 느끼는 충격에 익숙해질 수는 없었다. 수개월 가까이 계속된 추적 속에서 A씨와 그의 동료는 매번 끔찍한 영상들을 맞닥뜨려야 했다.

그들이 쫓는 이들은 이미 1년 전, 한차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고어전문방'. 소위 ‘동물판 N번방'이라 불리는 무리였다. 모바일 메신저 단체대화방에서 익명으로 동물학대 사진이나 영상을 공유하는 걸 넘어서, 실제 동물학대를 저지르고 메신저에서 그 사실을 자랑스레 과시하던 일당. 문제를 일으킨 단체대화방은 보도 이후 자취를 감췄고, 당시 정부는 청와대 국민청원 답변을 통해 엄벌을 천명했다.

그러나, ‘엄정 대응'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은 수사기관과 법정을 거치며 급격히 가벼워졌다. 경찰은 대화방 참여자 80여명을 소환 조사했지만, 그중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인원은 단 3명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1명은 미성년자였으며, 대화방을 개설한 방장은 벌금형 약식기소에 그쳤다가 당사자가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그나마 직접 동물을 학대한 행동대장만이 지난해 10월 징역 8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용두사미 같은 수사와 재판 탓일까. 모바일 메신저 속 동물학대 영상은 다시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A씨와 동료 역시 주변에서 ‘동물학대 단체대화방이 아직 남아 있다'는 주변의 말을 듣고 추적에 나섰다. 그러나 실제 들어가 본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에는 여전히 동물학대를 옹호하거나 ‘동물학대를 하고 싶다’는 식의 대화만 오고 갈 뿐이었다. 그렇다면 이곳은 세간의 눈치를 보며 동물학대를 하지 못하는 이들의 신세한탄을 나누는 단순한 대화방이었을까.

A씨 일행이 시간을 두고 관찰한 결과, 카카오톡 대화방은 ‘오디션장’에 불과했다. 누군가 대화방에 동물학대 영상을 올리면 짧은 시간 안에 삭제됐다. 영상을 올린 자는 대화방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그것은 ‘스카우트’의 시작이었다. 방장은 영상을 올린 사람을 쫓아내기 전, 비밀채팅을 통해 다른 대화방 접속 링크를 보냈다.

제보자가 텔레그램에서 확보한 동물학대 대화 현장. 범인 B씨는 고양이를 수차례 때렸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게시했다. 제보자 A씨 제공

제보자가 텔레그램에서 확보한 동물학대 대화 현장. 범인 B씨는 고양이를 수차례 때렸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게시했다. 제보자 A씨 제공

이중 삼중의 보안을 뚫고 잠입한 텔레그램 대화방은 아비규환이었다.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동물학대 영상을 올리던 같은 대화명의 한 이용자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사진과 영상을 쏟아냈다. 그는 고양이를 물고문하거나 다리를 부러뜨리는 등의 장면이 찍힌 영상을 반복적으로 올렸다. 그는 다리 하나를 부러뜨리면 ‘삼륜구동’, 두 개를 부러뜨리면 ‘이륜구동’이라 부르기도 했다.

‘직접 한 것이 분명하다.’ A씨는 직감했다. 영상을 올리는 이용자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 결과, 경기 용인시 일대에서 이용자가 저지른 범죄의 흔적을 찾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범인 B씨가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수했다. 그는 용인시에서 발견된 고양이 사체들이 자신의 범행임을 인정했다.

현장에서 확보된 32마리의 동물 사체는 농림축산검역본부 질병진단과에 부검 의뢰됐다. 이 중 경찰이 의뢰한 사체는 3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동물보호단체가 확보해 따로 부검을 의뢰했다. 이경현 수의연구관은 사체를 보자마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인을 판단할 수 있는 사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숨이 끊어진 사체는 신선기를 거쳐 팽창기, 부패활성화기, 부패후기, 백골화기로 나눠 부패 정도를 측정한다. 동물의 사인을 판단하려면 최소 부패활성화기 이전이어야 부검 시도가 의미가 있다. 더군다나 이번에 의뢰된 사체 중 일부는 오랫동안 야생에서 방치된 탓인지 다른 동물에 의한 섭식 흔적도 확인됐다는 게 이 연구관의 설명이다.

제보자가 확보한 사진에는 범인이 고양이에게 폭력적인 행위를 가한 정황이 여러 차례 확인되지만, 정작 동물 사체에서 확인된 폭행의 흔적은 1건에 불과했다. 제보자 A씨 제공

제보자가 확보한 사진에는 범인이 고양이에게 폭력적인 행위를 가한 정황이 여러 차례 확인되지만, 정작 동물 사체에서 확인된 폭행의 흔적은 1건에 불과했다. 제보자 A씨 제공

그나마 한 마리의 사체에서는 다발성 손상(여러 장기에 나타난 손상)이 관찰됐다. 이 연구관은 ‘외력에 의한 손상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는 “복강 쪽에 큰 힘이 가해져 비장이 두 군데로 갈라져 찢어져 있었다”면서 “복강 내에서 혈괴(혈관 밖으로 나와 체내에서 응고된 핏덩어리)도 관찰됐다”고 설명했다.

부검으로 확인된 법적 증거는 32마리 사체 중 1마리뿐. 범인 B씨의 휴대폰 등 다른 증거들을 종합한 경찰은 B씨가 고양이 7마리를 죽였다고 판단하고 검찰에 송치했다. 범죄행위가 인정될 만큼 증거가 확보된 사례들만 검찰에 넘겼지만, 여전히 A씨 일행은 경찰의 수사가 불완전했다고 말한다.

경찰은 우리의 연락을 귀찮아하는 것 같았어요. 범행을 저지른 장소가 총 4곳이고, 다른 곳에도 사체가 많이 있다고 분명히 얘기했고, 부검을 신청해야 한다고 설명도 드렸어요. 그런데 ‘권한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더니 신고한 저희와 연락을 끊었어요. 그러더니 곧바로 검찰에 송치해버리더라고요.

제보자 A씨, 2022년 사건 당시 동그람이와의 통화에서

그렇다면 부검 의뢰된 수십 구의 사체들은 누구가 죽인 걸까. 이 의문이 끝내 풀리지 않은 채 사건은 법정으로 넘어갔다. 초동 수사가 미흡한 대가는 컸다. 2022년 12월 나온 1심 판결은 징역 8개월. 그나마도 3개윌 뒤에 열린 항소심 재판부는 B씨를 집행유예로 석방했다. 재판부는 범인이 초범이고, 죄를 반성하고 있는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과연 범인의 행각이 모두 입증됐더라면, 재판부가 이런 판결을 내릴 수 있었을까. 포항 길고양이 살해사건의 범인은 징역 2년6개월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그는 수년간 10마리 넘는 길고양이를 죽인 뒤 그 사체를 전시하듯 내걸었다. 양평에서 개 고양이 등 동물 1,256마리를 방치해 죽게 만든 범인에게도 징역 3년형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모두 ‘범죄의 잔혹성'과 ‘피해 규모’를 양형사유에 언급했다.

제보자 일행은 범인의 집 근처, 근무지 근처에도 고양이 사체와 범행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이 조사를 더 하지 않은 채 범인을 검찰에 넘겼다. 결국 범인은 고양이 7마리를 학대한 혐의로만 기소됐다. 제보자 A씨 제공

제보자 일행은 범인의 집 근처, 근무지 근처에도 고양이 사체와 범행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이 조사를 더 하지 않은 채 범인을 검찰에 넘겼다. 결국 범인은 고양이 7마리를 학대한 혐의로만 기소됐다. 제보자 A씨 제공

그렇기에 A씨는 초동수사에 더욱 큰 아쉬움을 느꼈다. 그것은 이 연구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최선을 다해 부검에 임했지만, 법정에서 증거로 인정받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 이유는 단순히 사체의 백골화가 진행되서만은 아니었다.

사체와 부검 결과서가 법정에서 인정받으려면 ‘법률에 의한 절차에 따라 수집된 증거’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증거능력을 인정받으려면 그 수집 절차 또한 적법해야 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다른 사건에서 동물단체가 부검 의뢰를 해도 수사기관의 부검의뢰 절차를 밟아야 나중에 증거능력이 인정받는다고 안내할 때가 있습니다.

이경현 농림축산검역본부 수의연구관

즉, 경찰에서 수사 과정에서 사체를 수집하고 기록으로 남겨두고 그 증거를 부검해야만 법정에서도 효력을 갖춘 증거가 된다는 뜻이다. 결국 경찰이 얼마나 사건의 진상을 끝까지 밝히는 데 의지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사건의 진행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A씨의 아쉬움은 더욱 깊어진다.

물론 경찰의 개선 노력이 없는 건 아니다. 사건 이후 경찰은 이 연구관을 초대해 동물학대 사건에 대처하기 위한 강연을 열기도 했다. 일부 일선 수사현장에서는 초기 증거 수집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이 연구관에게 자문을 구하는 일이 늘었다. 범인이 풀려나는 걸 허망하게 지켜봐야만 했던 추적자 입장에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변화의 움직임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범인은 유유히 풀려났고, A씨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사건을 더 추적하기를 포기했다. 당연한 일이다. 수사 권한이 없는 민간인에게 ‘사건을 끝까지 쫓아달라'고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동물학대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려면, 정의감을 가진 개인이 아닌 국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수사기관이 나서야 한다. 모바일 메신저가 딥페이크 성착취물과 마약 등 각종 강력범죄 유통 현장으로 얼룩졌다는 보도가 이어지는 요즘이다. 과연 그 범죄의 씨앗은 어떤 토양에서 움트고 있었을까.

정진욱 동그람이 에디터 8leonardo8@naver.com
*자료제공 = 농림축산검역본부 질병진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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