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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정치의 한계

입력
2024.08.29 19:00
수정
2024.08.29 21:4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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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삼각 해도 어려운데 윤-한 현안 충돌
韓 대표, 지도자 아니라 인기인 같은 행보
반듯한 '강남스타일'보다 감동의 정치해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9일 오후 인천 중구 용유로 인천국제공항공사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2024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29일 오후 인천 중구 용유로 인천국제공항공사 인재개발원에서 열린 2024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정권 초기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이 문제가 되자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을 대통령실 가까이 앉혔더라면 소통에 도움이 됐을 것이란 말이 나왔다. 검사 시절 윤 대통령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동훈 검사'가 ‘그게 아닙니다’라며 반대하면 넉넉하게 수용했다. 그런 대통령과의 신뢰가 바탕이 돼 장관 이 되고 당대표의 길에 올라선 것이다. 윤-한 갈등 때마다 종국엔 화해하고 다시 손잡을 것으로 낙관한 이유이기도 했다.

술도 끊고 격노도 하지 않을 만큼 달라졌다는 윤 대통령이 한 대표의 의대 정원 유예 제안을 보고받고 다시 격노했다고 한다. 펄펄 끓는 주전자 뚜껑을 한 대표가 슬쩍 열자, 윤 대통령이 '닫아라'라고 불호령을 내린 모양새다. 예정된 만찬까지 무기 연기한 데다 현안마다 충돌하면서, 회복이 어려울 만큼 신뢰에 금이 간 것 같다. 당정이 이인삼각으로 임해도 어려운 처지에서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작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검사 출신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이번 충돌만큼 검사 정치의 한계를 드러낸 경우는 없다. 변호사라면 소송을 대리하며 법의 유연성을 경험하는 게 정치의 토대가 될 수 있다. 수사하고 단죄하고 심판하는 검사, 판사, 경찰 출신에게 이런 유연함을 바라기 어렵다. 법의 잣대로 불법을 재단하고 처벌하면 그만인 탓이다. 사실 공부를 잘했다는 것은 정답을 찾고 쓰고 하는 것을 잘했다는 뜻일 텐데, 문제는 정치에는 정답이 없다는 점이다. 자기 의견이 정답이란 주장이 선명할수록 결속은 사라지고 갈등과 불화가 남게 된다.

실제로 한 대표는 “국가 임무는 국민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라면서도 “어떤 게 정답인지 그것만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이 제안한 의대증원 유예 중재안보다 더 좋은 대안이 있느냐는 얘기다. 그러나 오답은 있어도 정답은 없는 정치에서, 그의 중재안은 여러 대안 중 하나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이번 갈등을 비롯한 한 대표의 최근 행보도 이런 기시감을 준다. 한 대표는 현안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알리바이만 성립시킨 뒤 책임질 일은 피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인 능력이란 정치적 주장이 아니라 문제의 해법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데 있다. 당내 조율되지 않은 증원 유예 카드를 일방 공개한 것도 대통령과의 차별화란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여야 대표 회담의 쟁점으로 삼았던 TV생중계 건 역시 성과보다 보여주기 회담에나 어울릴 법했다. 나경원 의원에게 던진 “공소 취소 부탁하셨죠”처럼 피의자와 기싸움 벌이듯 상대를 제압부터 하려는 검사 모습도 자주 겹친다.

윤 정부가 보여주지 못한 변화, 변하지 않으면 정권을 넘겨줄 수 있다는 위기감에 놓인 보수에게 '한동훈'은 희망이다. 여전히 불통의 대통령에게 노(no)라 말하고, 설득도 해낼 유일한 인물이다. 여당 대표로 선출한 데도 이런 보수의 고민이 녹아 있다. 이처럼 사람들은 멀리 보고 지도자를 찾고 있는것인데 뜻밖에 본인은 유명 인기인처럼 처신하는 것 같다. 자기본위적인 게 처음엔 대범해 보일 수는 있으나, 이런 식으론 윤한 갈등을 수십 번 한들 원하는 해법을 얻을 수 없다. 아흔아홉 번 싸움에서 승리할지라도 대선 같은 큰 전쟁에선 이기지 못하는 방식이다.

당의 원로들은 한 대표에게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정치하라고 주문했다. 가슴의 정치는 합리성으로 무장하고, 반듯하며 스마트한 ‘강남’ 스타일이 아닌 감동을 주는 정치다. 변화의 계기로 삼는다면 검사 정치의 한계를 보여준 지금의 소란은 새로운 시작의 전야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인은 뽑아 쓸 게 아니라 양성되어야 한다는 교훈만 남길 듯하다.

이태규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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