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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황의 전쟁범죄와 731부대 생체실험에 면죄부 준 '도쿄재판'을 아십니까

입력
2024.08.30 15:00
수정
2024.09.02 10:29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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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아와야 겐타로 '도쿄재판으로의 길'

관동군 헌병사령관을 지낸 도조 히데키(왼쪽)가 아시아·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으로 기소돼 1947년 12월 열린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의 피고석에 앉아 있다. 그는 이듬해 12월 23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관동군 헌병사령관을 지낸 도조 히데키(왼쪽)가 아시아·태평양전쟁의 A급 전범으로 기소돼 1947년 12월 열린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의 피고석에 앉아 있다. 그는 이듬해 12월 23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일 관계가 역사 문제로 반목을 거듭하는 것은 일본의 전쟁범죄가 제대로 단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죄의 실패는 일제 패망 후 1946~48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벌어졌다. 재판이 일제의 무모한 침략전쟁이 법적 책임만 벗는 것으로 끝나면서 한국, 중국 등 주변국과의 역사 갈등의 근원이 됐다.

일본 전후사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고(故) 아와야 겐타로(1944~2019) 일본 릿쿄대 명예교수는 △일제의 식민지배 △군통수권자였던 쇼와(히로히토) 천황의 전쟁 지시 △일본군 731부대 등의 인간 생체 실험 등에 면죄부를 준 도쿄재판에 주목했다. '도쿄재판으로의 길'은 일본 우익 세력의 협박에도 "역사적 사실은 알려야 한다"는 학자적 양심으로 완성한 그의 역작이다. 도쿄재판 연구의 필독서로 꼽힌다.

침략 면책한 도쿄재판,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책은 제목대로 도쿄재판의 과정이 아닌 도쿄재판이 열릴 때까지 무대 뒤에서 벌어진 일을 쫓는다. 패전 후 일본의 전범 처리와 전쟁 인식을 이해하는 데 실마리를 준다. 독일 전범을 처단한 뉘른베르크 재판이 세계적 주목을 받은 반면 도쿄재판은 일본인들의 기억에도 흐릿하게 남아 있다. 미국이 주도한 도쿄재판은 일본에 불리하게 끝난 '승자의 재판'이라는 인식이 전후 일본 사회에 팽배했다. 책은 "'대국' 일본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라도 도쿄재판이라는 '굴욕'을 불식하고자 하는 정념이 강했다"고 짚었다.

1945년 9월 27일 일본 도쿄 미국 대사관에서 만난 더글러스 맥아더(왼쪽) 유엔군 사령관과 히로히토 일본 천황. 한국일보 자료사진

1945년 9월 27일 일본 도쿄 미국 대사관에서 만난 더글러스 맥아더(왼쪽) 유엔군 사령관과 히로히토 일본 천황. 한국일보 자료사진

1948년 11월 12일 도쿄재판 재판부는 A급 전범 25명에 대해 전원 유죄를 판결하고, 이 중 7명에게 교수형을 내렸다. 기소되지 않은 나머지 A급 전범 용의자와 B, C급 전범에 대한 재판은 열리지 않았다. 미국은 원활하게 일본을 점령 통치하기 위해 천황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하면서 천황을 전범으로 소추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일찌감치 굳혔다. 정치적 타협을 선택한 것은 중국과 옛 소련도 마찬가지였다. 국공 내전 와중에 일본의 공산화를 막으려던 장제스 중국 주석과 냉전하 미국과의 관계를 염두에 뒀던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공산당 서기장은 천황을 면책하기로 했다.

재판이 2년을 넘어 장기화하면서 주변국들은 도쿄재판에 대한 열의를 상실했다. 아시아의 전쟁 피해국들은 도쿄재판에서 발언권 자체가 없었다. 난징대학살을 비롯해 일본이 아시아 민중에게 자행한 잔혹 행위에 대한 심판이 이뤄지지 않은 이유다. 저자는 책에서 조선을 짧게 언급한다. "조선인 강제 연행,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소추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었지만 당시 한국은 아직 독립하지 못하고 미군의 점령하에 있었다. 국가로서도 자립하지 못해 대표단이 없었기 때문에 이 '조선'이라는 지역은 후에 사라져 버린다."

도쿄재판으로의 길·아와야 겐타로 지음·유지아 방광석 옮김·소명출판 발행·359쪽·2만7,000원

도쿄재판으로의 길·아와야 겐타로 지음·유지아 방광석 옮김·소명출판 발행·359쪽·2만7,000원


일본인 학자의 못다한 연구, 한국인 제자에게

뉘른베르크재판의 기록이 43권으로 낱낱이 남겨진 데 비해 도쿄재판은 공식 기록도 없다. 저자는 미국 국립공문서관(NA)에 잠들어 있던 국제검찰국(IPS)의 방대한 내부 문서를 최초로 발굴했다. 도쿄재판의 피고 28명을 비롯한 전범 용의자와 증인·참고인에 대한 심문조서 등 1975년 기밀해제된 문서가 대부분이다. 도쿄재판이 열리기까지의 전모를 밝힐 수 있는 귀중한 사료였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주간지 '아사히 저널'에 1984년부터 2년간 26회에 걸쳐 연재한 글을 묶어 2006년 일본에서 펴낸 책이 '도쿄재판으로의 길'의 시작이다. 저자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반영한 책을 2013년 재출간했고, 이번에 유지아 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교수와 방광석 홍익대 교수가 번역해 한국에 소개했다.

유 교수는 '도쿄재판으로의 길' 이후의 역사를 쓰려고 준비하던 중 2019년 별세한 아와야 명예교수의 유지를 잇고 있다. 아와야 명예교수는 1997~2006년 일본에서 공부한 유 교수가 릿쿄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딸 당시 지도교수였다. 평소 자신의 자료가 일본뿐 아니라 동북아 연구자들에게 널리 활용돼야 한다는 고인의 뜻에 따라 유족은 원광대에 그의 책 2,000권과 연구 자료 일체를 기증했다. 컨테이너로 2번에 걸쳐 옮겨올 정도로 방대한 양이었다.

유 교수는 "교수님과 세미나를 준비하며 함께 읽은 자료들을 비롯해 그동안 연구한 전부가 넘어왔는데 이런 일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유 교수는 고인의 남긴 문헌으로 후속 연구를 계속해나갈 계획이다. 관련 연구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도 도쿄재판을 제대로 알게 되는 계기가 되길 그는 바란다. 유 교수는 "과거사와 전후 배상 문제를 놓고 일본과 해결을 본 국가는 없다"며 "그 배경이 되는 도쿄재판에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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