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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이용훈의 완숙한 연기로 '오텔로'의 영혼이 잠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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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이용훈의 완숙한 연기로 '오텔로'의 영혼이 잠식됐다

입력
2024.08.26 19:41
수정
2024.08.26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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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디 오페라 '오텔로' 리뷰
예술의전당서 18~25일 5회 공연 마쳐

오페라 '오텔로'. 예술의전당 제공

오페라 '오텔로'. 예술의전당 제공

"마리오 델 모나코(1915~1982)는 '오텔로' 연기를 하룻밤에 각기 다른 오페라 3편을 소화하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예술의전당 기획 오페라 '오텔로' 공연을 약 2주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타이틀 롤을 맡은 테너 이용훈은 전설의 테너 델 모나코를 인용했다. 그는 "오텔로는 단순히 소리를 크게 내는 게 아니라 여러 다른 색채의 소리로 아픔과 고뇌, 질투와 사랑 등 모든 감정이 뒤섞이게 표현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18일부터 25일까지 5회에 걸쳐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펼쳐진 베르디 오페라 '오텔로'는 이용훈의 이 같은 각오가 그대로 투영된 무대였다. 서정적 음색(리리코)과 힘 있는 소리(스핀토)를 모두 갖춘 '리리코 스핀토 테너'인 이용훈은 18, 22, 25일 세 차례의 무대에서 변화무쌍한 기교와 음색으로 객석을 압도했다.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강력한 소리로 해전을 승리로 이끈 총독의 용맹함을 보여줬고,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웠다. 오해 때문에 아내를 살해한 후 자책하며 자신의 가슴을 칼로 찌른 뒤에는 절절한 회한을 담아 노래했다.

오페라 '오텔로'. 예술의전당 제공

오페라 '오텔로'. 예술의전당 제공


충분한 제작 기간 둬 가능했던 수준 높은 무대

오페라 '오텔로'. 예술의전당 제공

오페라 '오텔로'. 예술의전당 제공

영국 연출가 키스 워너 연출로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2017년 초연한 버전을 가져온 이번 '오텔로'는 인물들의 불안정한 심리를 표현한 상징성 강한 무대로 극적 효과를 더했다. 오페라 속 최악의 악역으로 꼽히는 이아고는 선과 악을 상징하는 듯한 흰색과 검은색 2개의 가면을 들고 나와 흰색 가면을 던져 버리며 무대를 열었다. 데스데모나를 향한 오텔로의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거울 속 오텔로는 흰색 가면 대신 검은색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3막에 나왔다가 4막엔 부서진 채 무대 한편에 놓이게 되는 사자상은 오텔로의 몰락을 예고했다. 여기에 이용훈을 비롯한 전 캐스트가 수준급의 가창과 연기를 보여줘 170분(인터미션 20분 포함)의 러닝타임이 한순간도 지루함 없이 지나갔다. 이용훈과 함께 출연한 이아고 역의 바리톤 프랑코 바살로, 데스데모나 역의 소프라노 흐라추히 바센츠는 물론 20, 24일 출연한 이아고 역의 니콜로즈 라그빌라바, 데스데모나 역의 홍주영도 큰 박수를 받았다. 또 다른 오텔로는 코로나19 확진으로 하차한 테오도르 일런커이 대신 이탈리아 출신 테너 마르코 베르티가 맡았다. 시종 큰 색채 변화 없이 무대를 이끌어 간 베르티의 오텔로가 약간의 아쉬움을 남겼다. 이탈리아 출신 명지휘자 카를로 리치가 조율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명연도 빛났다.

오페라의 높은 완성도의 숨은 공신은 충분한 제작 기간을 두고 공연을 기획한 예술의전당이었다. 이번 공연 최고 스타였던 이용훈은 2년 전 출연을 확정했고, 지휘자 섭외도 일찌감치 마쳤다. 국제 무대에서 왕성히 활동하는 한국 예술가들을 정작 한국 공연에서 보기 힘든 이유는 1년 단위로 결정되는 공연계 운영 관행 때문이다. 오랜 준비 기간을 확보할 때 더 수준 높은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논리를 증명한 무대가 바로 이번 ‘오텔로’였던 셈이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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