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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를 집어삼킨 ‘배드민턴 천재’…안세영의 피 끓는 금메달

입력
2024.08.24 04:30
수정
2024.08.24 12:53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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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배드민턴 여자 단식 안세영

편집자주

최근 가장 '핫'한 스포츠 이슈를 찾아 주요 인물의 스포츠 인생을 정리해보는 코너입니다. 프로 무대의 스타플레이어를 비롯해 아마추어 '신성', 지도자, 체육단체장 등 하루하루 숨 가쁘게 변화하는 스포츠 세상 속에 사는 인물들을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봅니다.

안세영이 5일(현지시간) 파리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태극기를 들고 포효하고 있다. 파리=서재훈 기자

안세영이 5일(현지시간) 파리 라 샤펠 아레나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뒤 태극기를 들고 포효하고 있다. 파리=서재훈 기자

“생각보다 부상이 심각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대표팀한테 많은 실망을 했다.”

이달 초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 금메달을 목에 건 안세영(삼성생명)은 ‘금빛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대표팀 생활 7년 동안 쌓였던 분노를 표출하면서 “이 순간을 끝으로 대표팀과 계속 함께 가기 힘들지 않을까”라며 은퇴를 암시하는 말까지 했다.

2017년 중학교 3학년 때 태극마크를 단 안세영은 대한배드민턴협회의 전반적인 대표팀 운영 시스템에 경종을 울리고 싶어 했다. 선배 빨래, 방 청소 등 오랜 악습이 남아 있는 선후배 문화를 힘들어했고 자신에게 맞는 개인 스폰서 용품을 쓰지 못하는 것도 불만이었다. 무엇보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무릎 부상을 딛고 투혼의 2관왕을 달성한 뒤 협회의 대처에 불신이 크게 생겼다. 협회는 당시 1차 검진 때 금방 나을 수 있다고 했으나 안세영의 부상은 쉽게 나을 상태가 아니었다.

안세영이 경기 중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파리=서재훈 기자

안세영이 경기 중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파리=서재훈 기자

꾹꾹 참아왔던 감정들은 올림픽 금메달로 목소리에 힘이 실렸을 때 분출시켰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방수현 이후 나온 한국 배드민턴의 여자 단식 금메달은 안세영의 ‘피 끓는 메달’이었다. 하지만 후폭풍도 거셌다. 대회가 한창일 때 나온 안세영의 목소리는 모든 이슈를 집중시켰다. 실력으로도, 인터뷰로도 파리를 집어삼킨 것이다. 이에 안세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수많은 노력 끝에 올림픽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선수들에게 가장 죄송하다”며 “저의 발언으로 인해 축하와 영광을 마음껏 누리셔야 할 순간들이 해일처럼 모든 것을 덮어버리게 됐다”고 사과했다.

꿈을 이루고도 달콤한 피날레를 맺기보다 “불합리한 관습들을 유연하게 바꾸자”며 소신을 택한 안세영의 삶을 ‘이달의 스포츠 핫 피플’에서 돌아봤다.

중3 때 언니들 다 이긴 배드민턴 신동

안세영의 주니어 시절 모습. 대한배드민턴협회 제공

안세영의 주니어 시절 모습. 대한배드민턴협회 제공

안세영이 배드민턴 라켓을 처음 잡은 건 초등학교 1학년 때다. 배드민턴 동호인인 아버지 안정현씨, 어머니 이현희씨를 따라 체육관에 가서 재미로 쳤다. 안세영은 “어렸을 땐 좀 뚱뚱해서 건강도 생각할 겸 시작했는데, 재미를 붙였다”고 떠올렸다. 복싱 국가대표 출신 아버지의 DNA를 그대로 받아서인지 재능이 남달랐다. 실력이 쑥쑥 늘고, 어린 나이답지 않게 승부근성도 강했다.

안세영이 두각을 나타낸 건 초등학교 5학년인 2013년부터다. 그때 언니, 오빠 선수들과 연습하면 다 이겼다고 한다. 같은 해 펼쳐진 원천요넥스코리아주니어오픈 여자 단식에서 처음 우승했고, 그 이후로도 5년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2017년엔 한국 배드민턴계가 술렁였다. 여자 단식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한 중학교 3학년 선수가 현역 국가대표와 성인부, 고교 선수 7명을 연달아 제압한 것이다. 중학생이 국가대표로 선발된 건 한국 배드민턴 사상 최초였다. 1년 뒤 두 번째 나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안세영은 또 9전 전승을 거두며 ‘돌풍’이 아님을 증명했다.

안세영에게 시련 안긴 ‘천적’ 천위페이

도쿄 올림픽 당시 천위페이와 경기 중 넘어진 안세영의 무릎이 까져있다. 도쿄=연합뉴스

도쿄 올림픽 당시 천위페이와 경기 중 넘어진 안세영의 무릎이 까져있다. 도쿄=연합뉴스

안세영의 무서운 성장세는 침체기에 놓인 한국 배드민턴의 희망이었다. 협회 내부에서도 “방수현, 성지현을 능가하는 독보적인 에이스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기대했다. 하지만 주니어 시절부터 승승장구하던 안세영은 처음 출전한 국제 종합대회에서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1회전에서 천위페이(중국)를 상대해 힘 한번 못 쓰고 패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안세영이 겪은 첫 시련이었다. 충격이 컸지만 실망하지 않고 오히려 독기를 품었다. 천위페이에게 진 이후 “아시안게임을 통해 세계적인 선수들과 실력 차가 안 나게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앞으로는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연습하겠다”고 굳은 다짐을 했다. 그러면서 “천적의 존재는 나를 더욱 독하게 만든다”며 “훈련도 더 많이 해야 하는 이유가 된다”고 밝혔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 새벽부터 야간까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정도로 훈련을 했다는 안세영은 3년 뒤 열린 도쿄 올림픽에서 순조롭게 8강까지 진출했다. 4강 길목에서 만난 건 또 천위페이다. 일방적인 경기였던 아시안게임과 달리 팽팽하게 맞섰으나 역시 ‘천적’을 넘지 못하고 8강에서 첫 올림픽을 눈물로 마무리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통쾌한 복수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을 달성한 안세영. 항저우=연합뉴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을 달성한 안세영. 항저우=연합뉴스

안세영은 7번 넘어져도 8번 일어나는 힘을 가졌다. 7전 전패를 당했던 천위페이에게 2022년 7월 말레이시아 마스터스 결승전에서 처음으로 패배를 안기고 정상에 올랐다. 꽉 막힌 혈을 뚫은 안세영은 천적 징크스를 깨고 더 높은 곳을 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실제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2023년에는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 중 하나인 전영오픈을 제패하는 등 국제대회 우승만 7차례 달성했다. 2018년 처음 세계랭킹 순위에 진입할 때 맨 뒤에서 두 번째인 1,335등이었던 안세영의 이름은 어느새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갔다.

세계 1위 자격으로 나간 지난해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복수의 무대였다. 먼저 진행된 단체전 결승 단식 첫 경기에서 안세영은 항저우가 고향인 천위페이를 2-0으로 완파했다. 안세영의 활약으로 기선 제압에 성공한 여자 배드민턴 대표팀은 기세를 이어가 1994 히로시마 대회 이후 29년 만의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다.

안세영의 설욕전은 계속됐다. 개인전에서도 결승에서 맞닥뜨린 선수는 역시 천위페이였다. 단체전 맞대결 때보다 접전이 이어졌고, 경기 중 오른 무릎 통증이 심해져 잠시 치료를 받기도 했다. 33분 혈투 끝에 1세트를 따냈지만 2세트는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아 내주고 말았다. 딸이 아파하는 모습에 경기를 관중석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는 “이제 그만 기권해도 돼”라고 소리쳤지만 딸을 말릴 수가 없었다. 안세영은 무릎에 테이핑을 다시 하고 3세트에 임해 결국 투혼의 2관왕을 달성했다.

생각보다 컸던 아시안게임 후유증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 중 무릎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 안세영. 항저우=뉴스1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 중 무릎 통증을 호소하고 있는 안세영. 항저우=뉴스1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2개나 목에 걸고도 안세영은 들뜨지 않았다. 대회 이후 쇄도하는 방송 출연이나 광고 요청, 인터뷰 제의 등을 모두 고사했다. 그는 “선수로 보여드려야 할 게 많다”며 “꿈을 이룬 다음 그때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루지 못한 꿈은 바로 올림픽 금메달이다. 그래서 당시엔 휴식과 부상 치료를 최우선적으로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부상 정도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아시안게임 직후 병원 검진 결과 오른 무릎 슬개건 부분 파열로 2주에서 6주 정도 재활 후 복귀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통증은 줄어들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다른 병원을 찾았더니 처음 진단과 다르게 짧은 시간 내에 좋아질 수 없고 올림픽까지 통증에 적응하면서 견뎌야 한다는 소견이 나왔다. 부상에 대한 스트레스가 워낙 큰 나머지 “정말 땅굴을 많이 팠다”고 힘든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안세영은 부상 탓을 하고 싶지 않았다. “파리에서 낭만 있게 끝내겠다”는 출사표로 올림픽 금메달을 계속 꿈꿨다. 그리고 실제 올림픽 전 마지막 두 차례 국제대회 결승에서 천위페이와 우승 1번, 준우승 1번을 나눠가진 것도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됐다. 통증에 적응하면서 경기력을 끌어올린 안세영은 파리 올림픽 사전캠프 훈련 중 발목을 다치기도 했지만 언제나처럼 강심장과 상대 허를 찌르는 경기 운영으로 ‘금빛 스매싱’을 날렸다.

안세영의 끝나지 않은 승부

안세영이 2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선수단 격려 행사에 참석해 미소 짓고 있다. 연합뉴스

안세영이 22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선수단 격려 행사에 참석해 미소 짓고 있다. 연합뉴스

올림픽은 끝났지만 안세영의 승부는 끝나지 않았다. 안세영이 분노가 자신의 원동력이라며 날 선 반응을 보이자 협회도 대응했다. 협회는 안세영의 작심 발언 이후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 반박했다. 안세영에게 대회 출전을 강요한 적이 없고, 유일하게 전담 트레이너를 붙여주는 등 특별 관리를 해줬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 과정에서 서로 간 소통은 없어 논란만 일파만파 커졌다.

이후 안세영은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게 아니다”라며 협회의 시스템 변화를 당부했다. 그는 SNS에 “궁극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불합리하지만 관습적으로 해오던 것들을 조금 더 유연하게 바꾸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지금부터는 협회 관계자분들이 변화의 키를 쥐고 계신 만큼 더 이상 외면하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주셨으면 한다”고 적었다. 협회와 진솔한 대화도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 소통의 장은 마련되지 않았다.

반면 정부와 국회는 안세영의 목소리에 응답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22일 선수단 만찬 자리에서 “좋은 결과를 낸 방식은 더 발전시키고, 낡은 관행들은 과감하게 혁신해 청년 세대의 가치관과 문화와 의식에 맞는 자유롭고 공정한 훈련 환경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앞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들도 안세영의 의견을 약 30분간 청취했다.

김지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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