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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쓰레기에 미친 정치인을 보고 싶다

입력
2024.08.22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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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달 6일 제주 먼바다에서 조업 중인 '607 영진호'가 바다에 버려진 폐그물 더미를 끌어올리고 있다. 제주=유대근 기자

지난달 6일 제주 먼바다에서 조업 중인 '607 영진호'가 바다에 버려진 폐그물 더미를 끌어올리고 있다. 제주=유대근 기자

서귀포시 여순항에서 배를 타고 60~70㎞를 달려 도착한 제주 먼바다는 철저히 고립된 공간이었다. 휴대폰 신호는 끊겼고 조타실에 두 대 있는 위성전화마저 고장 나 있었다. 레이더에만 먼 거리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이 점으로 찍혀 있을 뿐 육안으로는 어떤 배도 보이지 않았다. 마도로스의 낭만 따윈 기대하기 어려웠다. 선원들은 밤낮없이 고되게 일한 뒤 잠시 숨을 돌리고는 다시 그물을 던지고, 끌어올리길 반복했다. 염천에 중노동을 하다 보면 땀범벅이 되지만 심신이 지친 탓에 찜찜하다는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배에서 일주일 정도 생활할 거라면 옷 한 벌만 가져가도 된다"던 선주의 말뜻이 그제야 이해됐다.

기자는 지난달 3일부터 10일까지 7박 8일 동안 '607 영진호'라는 137톤급 어선을 얻어 타고 제주 먼바다 조업에 동행했다. 해양 쓰레기 문제를 취재하기 위해서다. 뭍에서 만난 어부와 해녀, 바다 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아무리 설명해줘도 직접 보는 것만 못하다. 눈으로 봐야 심각성을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영진호는 조업 내내 깊은 바다에서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쓰레기 탓에 고기를 제대로 잡지 못했다. 고기와 쓰레기가 뒤엉킨 참담한 광경을 직접 목격한 뒤에야 기자도 해양 쓰레기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를 덮친 재앙이라는 걸 깨달았다. 바다의 비극은 가까이 가야 보였다.

많은 시민들이 해양 쓰레기 탓에 바다가 엉망이 돼가고 있음을 어렴풋이 안다. 하지만 관심도가 아주 높은 주제라고 말하긴 어렵다.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체감하기 어려운 탓이다. 또, 당장 먹고사는 일도 버거운데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난제까지 관심 두는 건 쉽지 않다.

정치인은 이럴 때 필요하다. 시민들을 대신해 정말 중요한 의제를 찾고 해결 방법까지 모색하는 게 그들의 역할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판에서 쓰레기 이슈에 주목하는 정치인은 매우 드물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전문가들에게 "해양 쓰레기 문제 해결에 '미친' 국회의원이 누가 있느냐"고 물으면 즉답하지 못했다. 일회성 토론회 등을 개최한 이들은 있지만 기어코 해결의 단초를 찾겠다며 집요하게 파고든 국회의원은 본 적 없다는 것이다.

사실 국회가 마음먹으면 바다 쓰레기를 줄일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내륙 쓰레기가 강을 따라 바다로 흘러드는 것을 막는 차단막 설치만 해도 그렇다. 해양 쓰레기의 65%가 육상에서 유입된 것인데 전국 주요 하천에 차단막을 설치하면 이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1개 설치할 때 6억 원쯤 드는 높은 비용 탓에 지방자치단체들이 머뭇거린다. 설치 예산을 국비로 지원해준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지난 국회(21대) 때 관련 법(해양 폐기물 및 해양오염퇴적물 관리법) 개정안이 발의됐었지만 임기가 끝나면서 폐기돼 버렸다.

이제 막 문을 연 22대 국회에서는 '임기 4년 동안 해양 쓰레기 문제 해결의 단초를 내가 한번 찾아보겠다'는 야심만만한 국회의원이 한 명이라도 나오면 좋겠다. 장담컨대 역사에 남는 정치인이 될 수 있다. '26년 뒤면 바다에 물고기보다 플라스틱이 더 많을 것'이라는 예측(영국 엘런맥아더재단)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해양 쓰레기는 인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유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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