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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슬라의 굴욕

입력
2024.08.19 16: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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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테슬라 모델 X. AP 연합뉴스

테슬라 모델 X. AP 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전기차 ‘모델3’에 대한 예약 주문을 받기 시작한 건 2016년 4월이다. 1,000달러의 예치금을 걸고 1년 반 이상 기다려야 하는데도 주문은 한 달 만에 40만 대를 돌파했다. 아무나 탈 수 없는 전기차, 테슬라의 인기는 이처럼 하늘을 찔렀다. 테슬라는 '시대정신'을 상징했고, 전기차를 몰면 앞서 나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 혁신의 대명사가 된 테슬라는 주가도 폭등했다. 2020년 3월 300달러대였던 주가는 같은 해 8월 1,500달러까지 치솟았다. 자고 일어나면 오르는 주가에 ‘천슬라’,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이 생겼다. 주가가 기업 수익의 몇 배인지 보여주는 주가수익비율(PER)이 1,000배도 넘어서자 증시에선 이제 PER가 아닌 주가꿈비율(PDR·Price to Dream Ratio)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렇게 ‘갓슬라’(신을 뜻하는 God와 테슬라의 합성어)가 탄생했다.

□ 그러나 잘나가던 테슬라도 치열한 경쟁을 피할 순 없었다. 지난해 4분기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은 중국 비야디(BYD)에 전기차 세계 1위 자리를 내줬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1~6월 전 세계 등록 전기차 616만 대 중 BYD가 129만 대, 테슬라가 89만 대를 차지했다. 가격인하 전쟁까지 불붙으며 테슬라의 2분기 영업이익은 33%나 감소했다. 더 큰 악재는 시장의 성장세가 예전 같지 않다는 데 있다. 전기차 대중화 직전 수요 침체 기간(캐즘)이 길어질 것이란 우려도 적잖다.

□ 결정타는 최근 잇따르고 있는 테슬라 전기차 화재다. 지난 16일 경기 용인시에서 노상 주차 중이었던 테슬라 전기차에서 불이 나 4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꺼졌다. 차량 하부에서 연기가 나자 곧바로 소화기를 뿌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같은 날 포르투갈 리스본에선 테슬라 전기차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화재로 차량 200여 대가 전소됐다. 전기차 공포(포비아)가 확산되며 일부 아파트에선 지하 주차나 출입까지 금지하고 나섰다. 갓슬라로 추앙받던 테슬라는 이제 눈총을 받으며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다. 머스크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주목된다. 화무십일홍이라지만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

테슬라 전기차 화재.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테슬라 전기차 화재.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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