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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현장에서 새 차 자랑한 북한 김정은

입력
2024.08.14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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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9일 평안북도 의주군의 수해 현장을 재차 방문한 조선중앙통신 사진에서 전용열차 내부에 최신형 메르세데스-마이바흐 GLS 600 4MATIC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추정되는 차량이 포착됐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8~9일 평안북도 의주군의 수해 현장을 재차 방문한 조선중앙통신 사진에서 전용열차 내부에 최신형 메르세데스-마이바흐 GLS 600 4MATIC 페이스리프트 모델로 추정되는 차량이 포착됐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어린 시절 사진에 대한 관심은 기록하는 쪽보다 타인이 촬영한 사진을 감상하는 쪽이 먼저였다. 또래들보다 일찍 다양한 음악에 빠져든 덕에 아티스트들의 레코드 앨범 재킷에도 관심이 많이 갔다. 앨범 커버에 실린 사진들을 보며 사진에 담긴 음악가들의 메타포를 찾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했다.

글쟁이는 글로, 그림쟁이는 그림으로, 사진쟁이는 사진으로 말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지금도 여전히 사진가들의 사진 속 행간을 마주하며 읽고 대화하는 시간은 '대부분' 행복하다.

다른 장르의 사진보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명확한 보도사진을 업으로 삼으면서 사진언어를 선전 도구로 사용해 일방적으로 의도를 강제 주입시키려는 나쁜 사진들과 가끔 마주친다. 사진의 특성인 사실적 상황을 부각시켜 의심할 틈을 주지 않지만 천천히 사진을 곱씹어 보면 억지스러운 일차원적 표현은 천박스럽기까지 하다. 치밀하게 꾸몄지만 대부분 직관적인 표현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속내가 빤하다.

'반성하고 있어요.' '난 착해요.' '약자를 돕고 있어요.'

아무리 완벽하게 구성된 사진언어라 하여도 의도하지 않은 디테일이 담기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사진가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지 않은 상황이다.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연히 기록된 것들을 유추해 시간·장소·시대상 등을 특정할 수 있고 때론 말실수처럼 숨기고 싶은 치부들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한다.

지난 10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안북도 의주군 수해 현장을 8~9일 재차 방문했다며 전용 열차 위에 마련된 연단 옆에서 주민을 향해 손을 흔드는 김 위원장의 사진을 공개했다. 구석구석 살펴보니 사진 오른쪽 문 뒤에 벤츠 엠블럼이 부착된 검은색 최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SUV) 한 대가 놓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북한 고위 간부들의 고급차 사용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에 어긋난다. 2017년 12월 채택된 안보리 대북제재결의에 따르면 고급 승용차 등을 포함한 사치품이나 운송수단의 직간접적인 대북 공급·판매·이전은 제재 위반이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의 재난 상황 중 김 위원장이 인민을 위로하러 간 자리에서 의도치 않은 실수로 차량을 공개한 것으로 추측했다. 겉으로는 인민을 위하는 척했지만 사진 한 구석에 남겨둔 물욕 한 조각은 그들의 이중적 행태를 증언하고 있다. 사진이 전해주는 우연의 단서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차량 번호판엔 '7·271953'이란 숫자가 적혀 있다. 북한이 미국에 승리했다고 주장하며 '전승절'로 기념하는 한국전쟁 정전협정체결일을 의미하는 것이고, 외관을 살펴보았을 때 이 차량은 올해 4월 한국에서 판매를 시작한 '메르세데스-마이바흐 GLS 600 4MATIC 페이스리프트'라는 고가의 모델로 최근에 들여왔음을 알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의 1호 사진기자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현장의 다양한 상황을 열성적으로 카메라에 담은 노력이 사진의 우연성을 통해 오히려 어려움에 빠진 인민을 기만한 것을 자백한 셈이 됐다.

집단적 대중의 무지몽매함을 이용해 사실을 바탕으로 진실을 왜곡시키는 수법은 기득권 세력이 대중 여론을 입맛에 맞게 조종하기 쉬운 방법이다. 보이는 것만으로는 진실을 파악할 수 없는 세상이다. 사진의 행간을 읽는 법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류효진 멀티미디어 부장 jskn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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