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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역사 감춘 日 교육 탓… '위안부 문제' 인권침해 아닌 외교사안으로 봐

입력
2024.08.10 04:3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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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아쉬운 일본 젊은 세대의 역사 인식

편집자주

우리에게는 가깝지만 먼 나라 일본. 격주 토요일 연재되는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은 미디어 인류학자 김경화 박사가 다양한 시각으로 일본의 현주소를 짚어보는 기획물입니다.

일본 사회가 부정적인 과거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바람에 상당수 일본 젊은 세대는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낮은 상태다. 일러스트 김일영

일본 사회가 부정적인 과거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바람에 상당수 일본 젊은 세대는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낮은 상태다. 일러스트 김일영

◇ 후쿠오카 향토음식 ‘모츠나베’, 한반도 출신 광부의 식문화에서 유래

얼마 전 일본 후쿠오카 지역의 대학생들에게 한일 문화교류에 대해 온라인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다. 모처럼 후쿠오카의 젊은이들과 대화할 수 있는 자리였던 만큼, 그 지역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인 ‘모츠나베(もつ鍋)’가 실은 한반도의 식문화와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만큼 다소 자세히 적겠다.

모츠나베는 소의 내장을 양배추, 부추 등 채소와 함께 끓여내는 ‘일본식 곱창 전골’이다. 불교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육식이 금지됐던 일본에는 육류 조리법이 발달하지 않았다. 하물며 내장 요리는 재료 손질이 까다로워서 고기 음식 중에서도 조리 난도가 높다. 게다가 후쿠오카는 신선한 해산물이 풍부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바다의 진미가 넘치는 이 미식의 항구에서 왜 내장 요리가 발전했을까? 일제 식민지 시절 그 지역 탄광에서 일했던 한반도 출신 광부들의 식문화에서 비롯됐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는다.

20세기 초 일본에서도 고기 음식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있었지만, 일본인들은 살코기 이외 부위를 잘 먹지 않았다. 그런데 한반도 출신 광부들이 소돼지의 내장이나 부산물 등을 채소와 함께 끓여 간장으로 양념해 먹었다. 버려지던 식재료를 고된 노동으로 지친 몸을 보양하는 ‘스태미나’ 전골로 변신시킨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규슈 지역 탄광이 문을 닫은 후에도 이 음식은 후쿠시마에 남았다. 해방 이후에 일본에 남기를 선택한 ‘자이니치 코리안(在日コリアン, 한국인과 북한 국적의 조선인을 아울러 부르는 일본말)’에 의해 이 식문화는 계승됐고, 어느새 후쿠오카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이 된 것이다.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이 이야기가 “후쿠오카의 모츠나베의 원조는 한국의 곱창전골”이라는 식의 주장으로 왜곡되면 곤란하다. 후쿠오카의 모츠나베가 한반도 출신 탄광 노동자들의 음식에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후쿠오카 지역을 대표하는 독특한 지역음식이라는 점은 틀림없다. 사실 특정 음식이 ‘원래’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를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식문화는 늘 이동하고 변화하며,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져 전개된다. 일제시대에 전래된 마른 멸치로 육수를 내는 일식 조리법을 사용한다고 해서 부산의 ‘멸치국수’가 일식의 아류는 아니지 않은가?

아무튼 뜻밖의 모츠나베 이야기에 후쿠오카 젊은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모츠나베가 지역 고유의 음식인 줄로만 알았다”는 것이다. 사실 모츠나베의 한반도 기원설은 대부분의 일본인에게 금시초문일 것이다. 일본에서 포르투갈에서 건너왔다는 ‘덴푸라’(일식 튀김), ‘고로케’의 기원이 프랑스 요리라는 등의 음식 이야기는 흥미롭게 회자되는 주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츠나베가 한반도에서 온 식문화에서 시작됐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거론되지 않는다.

◇ 과거사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일본의 젊은이들

최근 일본 젊은이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이 부쩍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한일 두 나라의 뒤얽힌 근대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른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도 젊은이의 역사의식 부재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한국의 젊은이들은 한일 사이에 존재하는 아픔의 역사를 비교적 잘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피해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배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상대적으로 일본의 젊은이들은 과거사에 대한 한일 간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점은 알아도, 구체적으로 어떤 역사가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요즘에는 케이팝이나 드라마, 영화 등 대중문화 콘텐츠를 통해 양국의 크고 작은 근대사나 한일 간 인식 차이를 접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아쉬운 부분은 있으나 이는 고무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2018년 한국의 유명 아이돌 그룹 멤버가 원폭으로 인한 버섯 구름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음악 방송 출연이 취소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대학 강의에서 이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는데, 대부분 일본 학생들이 “수많은 일본인 원폭 희생자의 아픔을 배려하지 않은 행동”이라는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사실 문제의 티셔츠는 개인적으로도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수많은 생명을 살상한 전쟁 무기를 디자인 요소로 활용한 것이 불편했다. 하지만 그 티셔츠는 광복절 기념 아이템이었다. 원폭을 긍정하는 의미가 아니라, 한반도가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의미가 더 컸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런 역사적인 맥락을 이해하지 못했다.

종군 위안부 후원 굿즈를 들고 다녔다는 이유로 ‘반일’이라는 낙인이 찍힌 한국 아이돌 가수도 있다. 한국 아이돌을 좋아하지만, “일본 팬의 기분을 고려한다면, 불필요한 정치적 메시지는 자제해야 마땅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일본의 많은 젊은이들이 종군 위안부와 관련한 역사적 사안을 여성 인권을 침해하는 폭력의 문제로 보기보다는, 한일이 팽팽하게 자존심 싸움 중인 외교 사안으로만 보고 있었다.

이런 역사의식의 부재가 일본 젊은이들 개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일본 사회가 부정적인 과거사에 대해 제대로 된 교육을 등한시한 결과다. 침략과 폭력으로 얼룩진 역사를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일본 사회 전체의 과제다. 부끄러운 역사를 애써 되씹고 교훈으로 삼는 일이 쉽지는 않다. 더구나 일본에서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으로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라는 점도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량 인명 살상 무기에 희생된 피해자라는 정서도 존재한다. 이렇게 복잡한 역사적 맥락이 존재하는 만큼, 과거사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과 성찰이 필요하지만 여전히 과제가 많다.

◇ 스스로 아픔과 상처를 기억하는 노력

일본 사회가 부정적인 역사를 모두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다. 8월이 되면 일본 사회는 어김없이 추모 모드가 된다. 일본이 연합군에 패전을 선언한 1945년 8월 15일을 ‘종전기념일’로 기리는데, 이때에는 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 피해자들의 아픔을 위로하는 행사가 수행된다. 전쟁을 주동한 가해자의 역사를 반성하는 데 더 중점을 뒀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하지만, 원폭으로 희생당한 수많은 자국 민간인의 아픔과 상처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도 이해된다. 고통받는 자국민 희생자를 보듬고 위로하는 꾸준한 노력에 보답하듯, 2016년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히로시마의 원폭 희생자 추모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일본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록을 둘러싼 논란은 뼈아프다. 한국 정부가 조선인의 강제 동원 사실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은 채 세계유산 등록에 동의해 줬다. 결국 사도 광산에서의 강제 연행 사실을 부인한 일본 정부가 입장을 관철한 모양이 됐고, 일본에서는 “한국 정부의 엄청난 ‘조력’ 덕분에 이룬 쾌거”라는 식의 보도가 잇따른다. 한일 관계 개선의 걸림돌인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욕 때문에 일제시대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 피해자들의 아픔을 외면하는 듯이 보이는 상황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그들의 상처를 보듬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겠는가? 일본 젊은이들의 역사의식 부재를 지적하기 전에, 한국 사회가 스스로의 역사 의식을 되돌아봐야 할 때다.

김경화 미디어 인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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