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군 "반대 입장 밝혔는데도
수입천댐 건설 계획 발표 강행"
환경단체 "댐 건설 목적 불분명"
단양도 "관광자원 수몰" 반발
8일 오전 찾은 강원 양구군 양구시외버스터미널과 군청 앞 도로 등 시내 중심가 곳곳에는 20여 개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죽어라 댐 백지화했더니 또 시작이냐', '누구를 위한 정책이냐' 등 수입천댐 건설에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정부에 대한 양구군민들의 깊은 불신과 배신감이 묻어나왔다.
환경부가 지난달 양구군 방산면 북한강 지류인 수입천을 저수량 1억 톤 규모의 기후변화대응 다목적댐 건설 후보지에 포함시키면서 양구주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2003년 정부가 수입천 지류에 담성골댐을 지으려다 주민 반대로 2007년 이를 포기했는데 다시 수입천에 댐을 짓겠다는 계획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양구읍 중리 마을회관 앞에서 만난 김만준(74)씨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 댐을 슬그머니 또 짓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되물었다.
양구군은 수입천댐 건설로 관광지인 두타연 계곡과 △천년고찰 두타사 터 △천연기념물 열목어(제73호), 산양(제217호) 서식지 △농지 10만2,479㎡(약 3만1,000평) 등이 물에 잠길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고방산 봉우리 사이에 댐을 막으면 잦은 안개와 녹조가 발생하는 등 환경 변화와 가능성은 낮다고 해도 북한의 댐 공격에 대한 불안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양구군은 수도권을 위한 댐 건설 때문에 여러 차례 피해를 입은 지역이다. 일제시대인 1944년 완공된 화천댐과 1973년 완공된 소양강댐으로 마을 수몰과 △경작지 감소 △지역 단절에 따른 교통·물류비 상승 △댐 주변 규제로 최대 10조1,500억 원의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군은 추산하고 있다. 양구읍 이장협의회는 "육지 속 섬으로 고립돼 80년간 피해를 보는 양구에 또 댐을 건설하겠다는 것은 생존을 위협하는 처사"라며 "수입천댐 백지화를 위해 싸우겠다"고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수입천 지류에 자리해 댐의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놓인 양구 방산면은 그야말로 벌집을 쑤신 분위기다. 주민 정모(52)씨는 "그동안 수해가 없었고 물이 부족하지 않은 곳에 왜 댐을 지으려 하는지 모르겠다"며 "전국에서 가장 반발이 적을 곳을 선택한 것 아닌지 의구심마저 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앞서 6일 방산면 복지회관에서 열린 설명회에선 "사방이 댐에 가로막히고 하늘에선 헬기 사격이 이뤄지는 곳에서 과연 사람이 살 수 있겠느냐"는 주민들의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이태익(60) 주민자치위원장은 "마을이 수몰되지 않는다고 해도 수입천 하류에서 농사를 짓거나 펜션을 운영하는 주민 대부분이 생계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구군과 주민들의 화를 돋운 건 환경부의 태도다. 서흥원 군수가 지난달 24일 양구를 방문한 환경부 관계자에게 댐 건설 반대 의사를 전했음에도 수입천이 후보지에 포함됐기 때문이다. 양구군은 "반도체 클러스터에 물을 대기 위한 목적으로밖에 볼 수 없는 댐 건설 계획 발표에 앞서 주민들 입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환경단체 역시 수입천에 댐을 건설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양구 방산면 일원(200여㎢)은 2019년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서재철(56)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에 포함된 곳에 주민들도 반대하는 댐을 짓겠다는 것은 우리가 유엔, 국제사회와 한 약속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댐 건설의 목적도 불분명하다는 게 환경단체들의 주장이다. 극한 호우에 대응하기 위해 댐 건설처럼 '물그릇'을 확대하는 건 한계가 있다는 게 최근의 치수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일방적인 댐 건설 계획에 민심이 격앙된 곳은 양구뿐만이 아니다. 한강권역 단양천이 댐(저수량 2,600만 톤) 건설 후보지에 오른 단양군은 선암계곡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등 3경(景)과 자연휴양림을 비롯한 숱한 관광자원의 수몰을 우려하고 있다. 주민들이 댐을 원하지 않는 것은 물론, 용수가 부족하지도 않다는 불만도 양구와 판박이다. 이종욱(70) 단성면 이장협의회장은 "40년 전 충주댐을 만들 때 단양을 전국 제일의 호반도시를 만들어준다더니 지켜진 게 뭐 있냐"며 "집중호우 시기에 수도권 지킨다고 댐 물을 가두면 계곡 전체가 수장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 말은 못 믿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단양군과 군의회도 댐 백지화 건의문을 채택했다. "댐 건설을 요구한 적도 신청한 적도 없는데 후보지 포함은 말이 안 된다"고 환경부를 맹비난한 김문근 단양군수는 "도대체 어디에 쓰는 용수냐. 단양은 산업용수 공급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받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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