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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세상에서 낙관을 품기

입력
2024.08.07 00: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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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대학에서 심리학 공부를 할 때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우울한 현실주의라는 가설이었다. 1979년 로렌 알로이와 린 아브람슨이라는 두 심리학자가 우울한 사람들과 우울하지 않은 사람들을 두고 실험을 진행했다. 이 실험에서 심리학자들은 피험자들에게 버튼을 누르면 전구에 불이 들어오게 했는데, 사실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것은 무작위적인 것으로 버튼과는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울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이 이 현상을 통제하고 있다고 평가한 반면, 우울한 사람들이야말로 현상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각했다는 것이다.

이 우울한 현실주의라는 것은, 적어도 이후 내가 찾아본 바에 따르면, 한 이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많이 연구되고 지지가 된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가설에 꽤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러니까, 우울증 환자인 내게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상은 거의 완전한 혼돈 덩어리이며, 개인이 스스로의 운명을 어떻게 통제하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희망적이긴 할지언정 결국 망상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인간은 하나하나가 망망대해에 떠 있는 하나의 카누이며, 해류에 떠밀려 어딘가로 도달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늠할 수 없이 거대한 세상이 정하는 것이다. 뭐 그런 믿음을 가지고, 나는 대학을 졸업했다. 이런저런 일을 시도하다가 나는 프리랜서 작가가 되었고, 어쩌다 보니 6년이나 이 일로 먹고살게 되었다.

그리고 그 6년 동안, 서른이 된 나는 대학을 졸업할 때 가졌던 가치관을 새로 재점검하게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격동하는 세상이 부여하는 행운에 달려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나와 예전의 나는 한 결정적인 점에서 다르다. 예전에는 개인이 발버둥쳐봐야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개인이 자기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낙관적으로 세상을 인지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리 상황이 안 좋아 보여도, 별다른 근거가 없더라도 잘 될 수 있을 거라는 낙관을 품지 않으면 결국 절망 속에 표류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낙관을 품어야 기회를 잡고자 무엇이라도 시도할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세상은 그 시도에 행운으로 보답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경제는 불안정해 보이고 기후는 나날이 나빠지고 있으며 끔찍한 온갖 사건들이 일어난다. 특히 별다른 기반이 없는 나와 같은 2030세대는 역시 많이 불안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동지 된 마음으로 말하고 싶다. 불안하고 세상이 바뀌지 않을 수 있지만, 낙관을 품고 한 발짝 나아가면 좋은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 함께 힘내자고.

이 2030 세상보기 코너에 4년 정도 칼럼을 연재해 왔다. 처음 기회가 주어졌을 때는, 신문에 글을 썼다가 온갖 욕을 먹을 것 같아 망설였다. 실제로 4년 동안 별별 욕을 다 먹었지만 칭찬도 많이 들었고, 여러 방면에서 스스로 한 단계 더 나은 작가가 되었다고 느낀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다른 기회에 볼 수 있기를!


심너울 SF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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