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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살인' 전 112 신고 7번… 강력범죄엔 반드시 '전조증상'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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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살인' 전 112 신고 7번… 강력범죄엔 반드시 '전조증상' 있다

입력
2024.08.02 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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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예방 실패, 또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대책
"데이터 기반 예측, 범정부 치안 전략 변화 필요"

아파트 이웃 주민에게 일본도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백모씨가 1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아파트 이웃 주민에게 일본도를 휘둘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 백모씨가 1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2019년 4월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을 일으킨 안인득(47)은 다른 집 앞에 오물을 뿌리거나 초인종을 눌러 스토킹을 하는 등 범행 전 계속된 이상행동으로 이웃주민과 갈등을 빚었다. 사건 한 달 전엔 호프집에서 행인을 망치로 위협했다가 특수폭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8월 경기 분당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의 범인 최원종(23)은 2017년 조현성 성격장애 판정을 받아 치료를 받던 중 "약효가 없다"며 중단했다. 범행 전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흉기 사진 등을 올리고, 흉기난동을 암시하기까지 했다.

#2022년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의 전주환(33)은 3년에 걸쳐 피해자에게 300통 이상의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피해자 고소로 긴급체포 됐지만, 법원은 "도주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모든 강력범죄에는 '전조증상'이 있다. 전조증상만 사전에 포착해 대비했다면 비극이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단 얘기다. 최근 발생한 '일본도 살인사건'도 마찬가지다. 피의자 백모(37)씨가 흉기를 휘둘러 이웃주민을 살해하기 전 범죄 가능성이 높다는 징후들이 여러 곳에서 나타났지만 참사를 막지 못했다.

경찰 신고와 도검 소지 동떨어진 관리

1일 경찰에 따르면, 올 1월 이후 백씨와 관련해 접수된 112 신고는 7건이다. 아파트 인근 헬스장과 카페에서 행인에게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해 경찰이 출동했고, 반대로 백씨가 주변 행인을 신고한 것도 3건이다. 2월에는 종로구 한 외국 대사관을 경비하던 경찰이 이상행동을 하는 백씨를 보고 두 차례 제지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전조증상이 백씨가 일본도를 소지하고 있다는 정보와 별개로 관리됐다는 것이다. 대기업에 다니던 백씨는 지난해 말 상사와 갈등으로 퇴사한 뒤 일본도를 구입했다. 그는 지난 1월 장식 목적으로 도검을 소지하겠다고 신고해 경찰에서 허가를 받았는데, 앞서 이상행동 관련 신고가 있었는데도 정신감정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과 교수는 "전조증상은 범죄 위험성을 측정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지만 지금의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은 이를 종합적으로 데이터화하고 분석하지 못해 과학적 예측이 어렵다"고 했다.

도검 살인 나면 도검관리, 이상동기 범죄 후엔 정신질환자 관리…

지난해 4월 경기 수원중부경찰서 생활안전과 관계자들이 보관 중인 총기류 등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뉴시스

지난해 4월 경기 수원중부경찰서 생활안전과 관계자들이 보관 중인 총기류 등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뉴시스

일본도 살인사건이 터지자 경찰은 8월 한 달간 전체 소지허가 도검 8만2,641정에 대한 전수점검을 실시해 범죄경력 등을 토대로 소지허가를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도검 소지허가 요건을 강화하고 갱신 기간을 단축하는 등 법령을 재정비하겠다"고 거들었다. 지난해 신림역,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 등이 잇달아 벌어지자 수사기관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신질환자 관리체계 개선책이 쏟아지던 모습과 흡사하다. 앞서 교제폭력이 터지자 관련 특별법 제정 요구 목소리가 거셌으나 사건 직후에만 '반짝' 주목받다가 수그러들기도 했다.

도검에 의한 살인이 벌어지면 도검 소지허가 체계를 보완하고, 치료를 중단한 조현병 환자가 범죄를 벌이면 사전입원제를 도입하자는 식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대책으론 현대사회 범죄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높다.

치안전략 부재... 중장기 전략 필요

전문가들은 치안전략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전환을 주문한다. 1인 가구 증가,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성화 등 사회 변화에 따라 범죄 양상이 변한 만큼 전조증상에 대한 연구를 확대하고, 데이터와 인공지능(AI)에 기반한 범죄예측 시스템으로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범죄다발지역·시간을 특정하고 위험인물에 대한 맞춤형 표적 순찰도 대안이 될 수 있다"며 "관련 연구가 활발한 미국, 영국 등을 벤치마킹해 범죄 관련 데이터베이스 구축부터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국가 차원의 새로운 치안전략을 짜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는다. '경찰만능주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만큼 교제폭력은 여성가족부, 정신질환자 관리는 보건복지부, 재범률 관리는 법무부 등 관계기관 합동 대응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정부가 안보와 달리 치안 분야에서는 변화된 범죄토양에 대한 분석이나 중장기적인 전략 없이 주먹구구식 보여주기 대책만 내놓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총리 산하 TF를 구성해 국가적인 전략 설계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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