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독립' 보장 위해 대법관 종신제
교체·임명 기회 적다 보니 당파성 짙어져
미국인 10명 중 8명은 "임기 제한 찬성"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연방대법관 종신제 폐지론'을 띄웠다. 실현 가능성은 적지만 미국 연방대법원을 향한 미국인의 낮아진 신뢰도와 직결된 주장이다. '종신제'는 미국 헌법상 대법관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호하려는 장치였지만 이제는 오히려 대법원의 정치적 당파성을 키우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찮다.
바이든 대통령은 2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 기고문을 통해 대법원 개혁안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①대통령 면책특권 제한 ②대법관 임기 제한 ③대법원 행동 강령 제정 등의 주장이 담겼다. 특히 '대법관 임기를 제한하자'는 두 번째 주장에서는 대법관 임기를 18년으로 제한하고, 대통령이 2년마다 한 명의 대법관을 임명하는 개혁안이 제시됐다.
대법관 9명을 포함한 미국 연방판사는 임기가 없는 종신직으로, 스스로 은퇴하거나 탄핵되지 않는 한 사망할 때까지 일한다. 이는 "독립적인 사법부를 보장하고 당파적 압력으로부터 판사를 보호하기 위해서"(미 대법원 홈페이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길게는 한 대법관이 30년 이상 재직하는 만큼 지명할 때마다 공화당과 민주당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이 총동원됐다. 그렇다 보니 대법관의 당파성은 역설적으로 더 두드러진다.
고(故)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대법관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진보의 아이콘'으로 존경받는 인물이지만 퇴임 시기 때문에 원망을 사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암 진단을 받은 그는 후임 '진보 대법관'을 임명하게 해달라는 취지의 은퇴 요청을 거부했다. 긴즈버그는 결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하던 2020년 사망했고, 보수 성향 판사로 대체됐다. 대법원 내 대법관의 보수·진보 구도가 5대 4에서 6대 3으로 기운 순간이었다.
이렇듯 대법관 임명 기회는 대통령마다 '복불복'이기도 하다. 현재 대법관 9인은 △아버지 조지 부시(1명) △아들 조지 W 부시(2명) △오바마(2명) △트럼프(3명) △바이든(1명) 등 전·현직 대통령에 의해 임명됐다. 아들 부시와 오바마 전 대통령은 8년 동안 2명씩을 임명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4년 임기 동안 3명을 임명하는 행운을 얻었다. 또 공화당 대통령은 6명, 민주당 대통령은 3명을 각각 임명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보수화한 대법원은 2022년 임신중지(낙태)권을 폐기했고, 2023년 소수자에 대한 '적극적 우대 조치'도 금지했다. 특히 지난 1일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뒤집기' 사건에 관해 전직 대통령의 면책특권을 폭넓게 인정해 그의 숨통을 틔워 줬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법원에 대한 미국 내 불신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미국 보수 성향 매체 폭스뉴스가 지난 16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의 대법원 신뢰도는 38%에 불과했다. 또 응답자 중 83%는 대법원 판결이 '당파적'이라고 생각한다. '대법관 의무 은퇴 연령 설정'(81%)과 '18년 임기제'(78%)도 널리 지지받고 있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개혁안이 곧장 현실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연방판사의 종신 임기는 헌법에 명시된 것으로 해석되는데, 헌법 개정에는 △상·하원의원 각 3분의 2 이상 찬성 △주(州) 의회 4분의 3 비준이 필요해서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법원 개혁안은 공화당이 우세한 하원 통과는 사실상 불가능하고, 상원 통과 역시 합의를 거치지 않으면 힘들다.
사법부 개혁론자들도 다음 정권을 기약하는 모양새다. 안쿠시 카르도리 전 검사는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칼럼에서 "개혁론자들 사이에서는 카멀라 해리스 (대통령) 당선 시 상황이 바뀔 것이라는 신중한 낙관론도 제기된다"며 "해리스가 11월에 (대선에서) 승리하고 민주당이 의회 양원을 장악하게 되면 그는 개혁을 이끌기 좋은 입장에 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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