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스, 연례 국정연설서 금지 발표
"사기·돈세탁·납치·고문·살인까지 감행"
산업 종사자 2만5000명… 경제 악영향
필리핀 정부가 중국계 온라인 도박장에 칼을 빼 들었다. 경제 효과를 기대하며 산업을 허용했지만 금융사기, 인신매매, 고문 등 범죄 온상으로 전락하면서 8년 만에 전면 금지하기로 했다.
23일 미국 AP통신 등에 따르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22일 마닐라 의회에서 한 연례 국정연설에서 23일부터 모든 역외게임사업자(POGO)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규제 당국에는 연말까지 POGO 사업장을 폐쇄하라고 명령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합법 업체로 가장한 POGO가 도박에서 더 나아가 사기, 돈세탁, 성매매, 불법 입국 알선, 납치, 잔혹한 고문, 심지어 살인 같은 불법적인 영역까지 가는 짓을 감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국계 온라인 도박장이 필리핀 법 체계를 심각하게 남용하고 무례함을 보이는 행태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 참석한 의원들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리사 혼티베로스 상원의원은 “온라인 도박장이 이루 말할 수 없는 무수한 사회악을 이 나라에 가져왔다”면서 마르코스 대통령의 결정을 “온 나라를 위한 승리”라고 치켜세웠다.
POGO는 필리핀에서 운영되는 온라인 카지노다. 친중 성향인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이 임기 첫해인 2016년 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허용한 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도박이 금지된 중국 본토 고객을 겨냥했는데, 사업 확장 과정에서 중국계 자본이 대거 유입됐다.
이와 함께 정부 승인을 받지 않은 무허가 POGO도 급격히 늘었다. 현재 필리핀 내에서 운영 중인 POGO 300여 곳 가운데 250곳 이상이 불법으로 추정된다. 이들 업장에서 중국인이 연루된 범죄가 벌어진 정황도 속속 드러났다. 불법 시설 운영에 중국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달에는 팜팡가주(州) 포라크시 불법 도박 시설 내에서 중국 인민해방군 군복이 발견되기도 했다.
타를라크주 소도시 밤반시의 앨리스궈(35) 시장은 온라인 도박장과 유착하고, 중국인이면서 필리핀인으로 신분을 세탁한 혐의로 의회 조사를 받고 있다. 궈 시장은 직무가 정지되고 체포영장이 발부되자 도주한 상태다. POGO가 국가 안보와 사회 질서를 위협하자 마르코스 정부가 ‘전면 금지’ 칼을 빼 든 셈이다.
다만 이번 조치가 필리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지난해 말 기준 POGO 산업에 종사하는 필리핀인은 2만5,000명에 달한다. 장 엔시나스 프랑코 필리핀대 정치학 부교수는 “POGO 금지로 필리핀에서 연간 최대 140억 페소(약 3,300억 원)의 수입이 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POGO 업장에서 일하는 필리핀 국민에게 새 일자리를 찾아줄 것을 경제 관련 부처에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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